본관은 장연(長淵). 아버지는 위성부원군(威城府院君) 노영수(盧英壽)이다.
정종 때에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역임하였는데, 태종 즉위 후에 전 왕의 신하라는 이유로 외방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곧 복권이 되었으며, 1411년(태종 11) 딸이 태종의 후궁이 됨으로써 다시 관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
같은 해 12월 좌군총제가 되어 몇 년간 직책을 수행한 뒤, 1418년(태종 18)에는 도총제(都摠制)로서 내시위의 3번(番) 절제사 중 1번 절제사가 되었고, 이어서 판한성부사·우군도총제 등을 지냈다. 1419년(세종 1) 도총제의 직위로 죽으니, 왕은 3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관곽과 종이를 내려주었으며, 내관 황숭(黃崇)을 보내어 조문하였다. 시호는 제대(齊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