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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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공 · 사노비가 국가 혹은 자신의 소유주에게 납부하던 정해진 공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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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공 · 사노비가 국가 혹은 자신의 소유주에게 납부하던 정해진 공물.
내용

입역(立役)의 의무를 지지 않는 공노비 또는 소유주에게 노력을 제공하지 않는 사노비의 경우, 이와 같은 신공납부(身貢納付)의 의무가 있었다.

공노비에 관해서는 『경국대전』 호전 요부조(徭賦條)에 규정되어 있다. 16세에서 60세에 이르기까지의 외거노비(外居奴婢) 중 노(奴)는 1년에 면포 1필과 저화 20장, 비(婢)는 면포 1필과 저화 10장을 의무적으로 사섬시(司贍寺)에 납입해야 하였다.

사노비의 경우는 신공을 받는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에 법전류에 규정된 조항이 없다. 그러나 공노비의 신공에 준했음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

신공납부 방법은 포의 경우 5승포 35척을 1필로 하였으며, 저화는 10장이 면포 반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인조 이후 저화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포로써 대체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17, 18세기에 오면 쌀로 납부되는 경우도 있었고, 각 관사의 필요에 따라 물품으로 부과, 납부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규정된 신공만으로도 노비에게 큰 부담이었는데, 『속대전』에는 윤삭포(閏朔布)라는 새로운 신공 명목이 추가되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노비의 신공은 제대로 납공되지 않았고, 족징(族徵)·인징(鄰徵)·백골징포(白骨徵布) 등의 폐단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사노비의 경우는 그 수취의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에 소유주의 임의에 따라 증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큰 고역이 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1755년(영조 31)에는 감포령(减布令)을 내려, 노는 1필, 비는 반필의 포를 납부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 이후에도 노비의 고역은 해소되지 않아 1770년에는 비공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재해와 기근에 따라 노의 신공을 더 축소시켜주는 정책도 시행되었다.

노비의 신공은 국가 재정의 한 요소로 경감시에는 반드시 대체 방안이 마련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 정책 결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참고문헌

『영조실록』
『정조실록』
『경국대전』
『속대전』
『대전회통』
『증보문헌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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