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원종 11) 원종이 몽골과의 화평교섭에 의하여 출륙환도(出陸還都)를 결정하고 삼별초의 명단을 압수하자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장군 배중손(裵仲孫)과 함께 궐기하였다.
이들은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받들어 왕으로 모시고 관부를 설치하여 반몽골·반개경정부의 태도를 명확히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항전을 위하여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겼다.
이들은 한때 경상도·전라도의 연안지방을 석권하는 등 기세를 올렸지만 결국 이듬해 5월 여·몽연합군에 의하여 진도가 궤멸되자, 살아남은 세력은 김통정(金通精)의 인솔하에 제주도로 들어가 계속 항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