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희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삼별초의 난과 관련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야별초지유
관련 사건
삼별초의 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후기 삼별초의 난과 관련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70년(원종 11) 원종이 몽골과의 화평교섭에 의하여 출륙환도(出陸還都)를 결정하고 삼별초의 명단을 압수하자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장군 배중손(裵仲孫)과 함께 궐기하였다.

이들은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받들어 왕으로 모시고 관부를 설치하여 반몽골·반개경정부의 태도를 명확히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항전을 위하여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겼다.

이들은 한때 경상도·전라도의 연안지방을 석권하는 등 기세를 올렸지만 결국 이듬해 5월 여·몽연합군에 의하여 진도가 궤멸되자, 살아남은 세력은 김통정(金通精)의 인솔하에 제주도로 들어가 계속 항전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삼별초의 대몽항전과 지방군현민」(김윤곤, 『동양문화』 20·21합집, 198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