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우명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현릉참봉을 역임하였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학자.
이칭
  • 군량(君亮)
  • 신고당(信古堂)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 사망 연도1523년(중종 18)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471년(성종 2)
  • 출생지경상남도 함양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함양 평촌리 신고당 신도비 및 부부 묘 미디어 정보

함양 평촌리 신고당 신도비 및 부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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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현릉참봉을 역임하였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학자.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군량(君亮). 호는 신고당(信古堂). 경상남도 함양 출생.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노분(盧昐)이며,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로 동지중추부사 신광경(愼光庚)의 딸이다. 정여창(鄭汝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08년(중종 3) 형 노우량(盧友良), 아우 노우영(盧友英)과 진사시에 나란히 합격하여 인근에서 노씨삼주(盧氏三珠)라 불렀다. 1518년 김안국(金安國)이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안우(安遇)·노필(盧필)·김대유(金大有)와 함께 천거되어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이듬 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당하였다.

음운학에 조예가 깊어 사성(四聲)과 육예(六藝)에 통하였고,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해서(楷書)에 능하였다고 한다. 함양의 도곡서원(道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중종실록(中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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