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개인으로서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문예사조이다. 근대의 기계문명과 메카니즘적 조직 속에서 인간이 개성을 잃고 평균화·기계화·집단화되는 소외현상이 심각해면서 실존의 구조를 인식·해명하려고 하는 철학사상과 문예사조가 싹텄다. 1차·2차 세계대전으로 인류의 진보라는 낙관론이 황폐화하면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했다. 카프카·생텍쥐페리·카뮈 등 서구의 실존주의 문학은 전쟁의 폐허와 죽음을 체험한 한국의 전후 실존주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한국 문학은 사르트르의 휴머니즘을 수용하면서 1960년대 리얼리즘론으로 발전했다.
본질 탐구의 철학, 즉 합리주의 철학을 반대하고, 개개의 단독자인 현실적 인간 즉 현실의 자각적 존재로서 실존(existence, existenz)의 구조를 인식 · 해명하려고 하는 철학사상, 그리고 이 사상과 깊이 관련되거나 바탕으로 한 문학사조. 마르크스주의 쪽에서는 반진보적 철학으로도 보나, 이념의 철학이나 사물의 철학이 아닌 인간의 철학(에마뉘엘 무니에), 또는 체계적 ·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역 철학(로베르 캠벨) 등으로도 본다.
야스퍼스(Jaspers, K.)가 1931년에 처음 ‘실존철학’(『현대의 정신적 상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2차 대전 직후 사르트르(Sartre, J.P.)가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 계보는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근대에 와서는 키에르케골(Kierkeggard, S.A.)과 니체(Nietzsche, F.W.)를 선구자로 본다. 그리고 그후 후설(Husserl, E.)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하이데거(Heidegger, M.)와 야스퍼스에 이르러 실존철학으로서의 명확한 형태를 갖춘다. 이것이 제2차 대전 후 프랑스의 마르셀(Marcel, G.)과 사르트르에 의한 실존주의 사상운동으로 발전한다.
실존주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 한국어 역 : 사상계 통권 13호, 1954, 方坤 역, 新楊社, 1958)에서, 사르트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야스퍼스, 마르셀)와 무신론적 실존주의(하이데거, 사르트르)로 나눈다. 전자는 신 앞에 단독자인 종교적 실존, 후자는 신과 관계없는 양심적인 윤리적 실존(하이데거)과 신을 부정하는 자유로운 행동적 실존(사르트르)으로 양분되나, 이 모두의 공통점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것이다.
신이나 본질이 선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본래적 자기를 자기 스스로 계속 만들어 갈 수밖에 없음이 실존주의의 제1원리다. 즉, 허무와 자유 속에서의 자기 부정과 자기 초월의 반복을 통해서 자각적인 주체성이 창조된다. 주체적 결단에 의한 새로운 자기 존재의 선택과 비약은 자유를 근거로 한 자기 기투(企投)다. 여기서 실존은 역사적 · 사회적 조건에 규제되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이며, 고뇌 · 죄책(罪責) · 죽음 등의 한계상황(Grenzsituation)에 직면한다. 실존주의는 실존을 현존재(마르셀은 “수육적(受肉的) 존재”라고 함.)로써 그 주체성 · 자유 · 초월 · 결단 · 상황 · 성실 등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려고 한다.
2차 대전 직후 실존주의 사상운동을 전개한 사르트르는 『르 탕 모데르느(Les Temps Modernes)』(1945)의 창간사에서, 현대인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만을 고집하여 현실적 조건 바깥으로 추상화하려고 하는 분석정신과, 개인을 계급 · 국가 등 전체에 종속시켜 그 전체관을 절대화하려고 하는 총합정신의 양극간에 걸려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현대의 불안은 그 양극의 어느 쪽에도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이율배반적 분열에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무한 가능성을 지닌 중심이라고 본다.
인간의 실존을 이와 같이 강조하는 실존주의 사상운동이 전개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자본주의제도이건 사회주의제도이건 간에 근대의 기계문명과 메카니즘적 조직 속에서 인간이 개성을 잃고 평균화 · 기계화 · 집단화되어, 20세기 후반에 와서 인간의 교환 가능성과 인간의 타유화(他有化), 즉 소외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드러난 점, 둘째는 1차 · 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진보라는 일체의 낙관론이 황폐화된 점이다.
실존주의 철학사상은 동시에 문학사상으로도 발전한 바,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앙드레 말로(Malraux, A.), 메를로-퐁티(Merleau-Ponty, M.), 보부아르(Beauvoir, S.), 카뮈(Camus, A.), 즈네(Genet, J.), 생텍쥐페리(Saint-Exupery, A.) 등을 대표적 작가로 볼 수 있고, 소급해서 체코의 카프카(Kafka, F.)를 추가할 수 있다.
『정복자』(1928, 趙洪植 역, 세계문학전집 전기 26권, 正音社, 1965) · 『인간조건』(1933, 趙洪植 역, 세계문학전집 전기 26권, 正音社, 1965)의 작가 말로는 신 없는 허망의 세계에서 행동과 모험으로, 나아가서는 예술적 창조로 자기 구원을 찾는다. 『구토(嘔吐)』(1938, 梁秉植 역, 正音社, 1955, 方坤 역, 불란서문학전집 6권, 신태양사, 1959), 『벽』(1939, 鄭明煥 역, 세계문학전집 29권, 1959)의 작가인 사르트르는 선험적 의미의 폐기로 해방된 실존을 상황 속에 구속(engagement, 사회참여)함으로써 불안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음을 제시하는 인간혁명과 사회적 혁명의 총체적 실천을 기도한다. 『이방인』(1942, 方坤 역, 正音社, 1966), 『페스트』(1947, 방곤 역, 正音社, 1966)의 작가 카뮈(Camus, A.)는 세계의 부조리(absurde) 속에서 인생의 무의미에 직면하는 반항을 강조한다. 여기에 카프카의 『변신』(1916, 鄭庚錫 역, 一志社, 1958)과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1931) 등을 포함한 실존주의 문학은 한국의 전후 실존주의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존주의 철학은 박치우(朴致祐)의 「불안의 철학자 하이데거 1∼8」(조선일보, 1935.11.3.∼11.12.)에서 소개되고 있다. 문학은 2차대전 후, 특히 1950년 전후부터 한국에 본격 도입된다. 사르트르의 「불란서인이 본 미국 작가」(新文學, 1946.11.), 전창식(田昌植) 역의 「벽」(新天地, 1948.10.), 양주동의 평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新思潮, 1949.5.), 김명원(金明遠) 역, 카뮈의 「흑사병」(黑死病, 新京鄕, 1950.7.) 등이 도입 초기에 발표된다.
6 · 25 한국전쟁으로 뜸하다가, 휴전 전후부터 커밋트 렌스 의 「알베르 까뮈론」(사상계 통권8, 1953),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상계 통권13, 1954), 양병식(梁秉植)의 「사르트르의 문학적 위치」(연합신문, 1953.1.13.∼15.), 정하은(鄭賀恩)의 「문학 이전」(현대문학, 1956.3.∼4.), 안병욱(安秉煜)의 「실존주의 계보」(사상계 통권 21, 1955) 등 1953년 이후 약 10년간 20여 편의 실존주의 관련 논문이 주로 『사상계』지를 통해서 발표된다. 안병욱 · 김붕구(金鵬九) · 조가경(曺街京) 등이 가장 주요 활동을 했고, 그 내용도 실존주의에 대한 개념은 물론, 실존철학과 동양사상(박종홍), 실존주의와 기독교(金夏泰), 실존철학과 사회과학(조가경), 실존주의와 정신분석학(李東植), 마르크스주의 교리와 실존적 휴머니즘(김붕구), 휴머니즘과 실존주의(이환, 문학예술, 1956.7) 등 인접 사상과의 관련된 문제점에까지 미쳐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개 및 논의는 실존주의 문학작품의 번역 · 발표와 동시 진행된다. 앞서의 언급 외에 카뮈의 『전락』(朴光善 역, 日新社, 1958) · 『반항적 인간』(申梂澈 역, 日新社, 1958) · 『시지프스의 신화』(일신사, 1958) · 사르트르의 희곡 『파리떼』(김붕구 역, 新楊社, 1958), 카뮈의 『카뮈 단편집』(方坤 외 역, 신양사, 1958) · 『오해』(鄭秉熙 역, 신양사, 1960) 등이 있다. 이 무렵 『불란서문학전집』(신태양사, 1959)과 『세계문학전집』(정음사) · 『카뮈 · 사르트르집』(김붕구 역, 乙酉文化社, 1965) 등은 실존주의 문학 도입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 논저로는 로베르 드 류뻬의 『카뮈의 사상과 문학』(김붕구 역, 신양사, 1958), R.M. 알베레스의 『사르트르의 문학과 사상』(정명환 역, 신양사, 1958)과 『20세기의 지적 모험』(방곤 역, 일신사, 1958),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방곤 역, 신양사, 1958), 김붕구의 『새 불문학산고』(民潮社, 1964) 등이 있다.
1950년대의 실존주의 열기는 한국전쟁(6.25)과 관련이 깊다. 전쟁의 폐허와 죽음의 체험은 공동체와 기존의 가치관이 붕괴되어 고립된 개체의 실존 문제로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황폐화된 허무의 상황을 반영하고, 이에 대응되는 사상으로서 실존주의가 안성맞춤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운동이 인간과 세계가 폐허화된 2차 대전 직후에 일어난 것과 유사성을 지닌다.
김붕구 · 정하은 등이 저쪽 이론에 무게를 둔 논의라면, 고석규(高錫圭)의 『여백의 존재성』(지평, 1990)에 수록된 논문, 이어령(李御寧)의 『저항의 문학』(耕知社, 1959), 유종호(柳宗鎬)의 『비순수의 선언』(신구문화사, 1962) 등은 실존주의라는 당시의 문학적 · 지적 상황과 이쪽 현실(한국 전쟁, 폐허와 죽음)의 체험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존주의 작품 해석을 중심으로, 김동리(金東里)의 「본격작품의 풍작기」(조선일보, 1959.1.9.)를 계기로 김우종(金宇鍾) · 이어령의 반격을 받은 논전은 결국 ‘실존문학’ ‘극한상황’ ‘실존성’ 등의 표현 문제로 귀착된 실존주의 소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김우종, 「중간소설을 비평함」, 조선일보, 1959.1.23., 이어령, 「영원한 모순-김동리씨에게 묻는다」 경향신문, 1959.2.9.∼10.).
전후문학은 수용된 실존주의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죽음 및 폐허의 체험, 즉 영향과 자생의 실존주의 문학인 바, 시와 소설에서 구체화된다. 전봉건(全鳳健)의 기호화된 죽음의 응시는 자신의 참전 체험이고(연대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 1957), 김춘수(金春洙)의 허무 속의 존재 조명은 허무주의를 초극하려는 생의 가능성 추구다(시집 『꽃의 소묘』, 1959,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1959). 신동집(申瞳集)의 훼손된 인간 회복의 휴머니즘(시집 『서정의 유형』, 1954), 김남조(金南祚)의 생명 응시와 긍정(시집 『목숨』, 1953), 홍윤숙(洪允淑)의 방황과 불안(시집 『麗史詩集』, 1962) 등은 전후 실존주의 시의 성과다.
소설에서 곽학송(郭鶴松)은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적 · 가치 중립적 존재의 부조리 또는 모순(「철로」, 1954)을, 오상원(吳尙源)은 전쟁을 통해 죽음이 일상화되는 조건의 분석(「유예」, 1955)을, 손창섭(孫昌涉)은 소외된 잉여인간 내지 불구자적(不具者的) 아웃사이더의 존재조건 탐구(「잉여인간」, 1958)를, 하근찬(河瑾燦)은 전쟁이 부자(父子) 2대에까지 미친 역사적 비극상과 휴머니티(「수난2대」, 1957)를 각각 보여준다.
전후의 실존주의 문학은 리얼리즘 · 모더니즘 · 휴머니즘 등과 얽혀 복잡성을 띠고 있다. 첫째, 실존주의의 인간관계 단위는 개체(개인)인 단독자이며, 리얼리즘의 그것은 개체를 초월하는 어떤 객관적인 법칙의 힘이나, 전후의 실존주의는 객관적 묘사(현실과 존재 사이의 억압 양상)와 현실참여로 리얼리즘의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둘째, 실존주의의 허무주의와 모더니즘의 회의주의, 실존주의의 출발점인 실존과 모더니즘의 자아, 그리고 저항과 부정 등에서 전후의 실존주의는 모더니즘과도 밀착되어 있다(특히 시에서). 셋째, 전후의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의 휴머니즘을 수용하면서 전쟁 및 허무의 체험과 극복을 위한 휴머니즘과 앙가주망(engagement)의 방향을 취한다. 현실참여론은 역사의식, 비판과 고발, 민중의식 등과 어울려 1960년대의 리얼리즘론으로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