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동 ()

조선의 맥박 / 양주동
조선의 맥박 / 양주동
언어·문자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의 맥박』, 『조선고가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영문학자, 시인.
이칭
무애(无涯)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3년(고종 40)
사망 연도
1977년
본관
남해(南海)
출생지
경기도 개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양주동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맥박』, 『조선고가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903년에 태어나 1977년도에 사망하였으며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호는 무애이다. 잡지 『문예공론』(1929)을 발간하고, 시집 『조선의 맥박』(1930)도 발표하였다. 그의 업적은 고시가에 대한 해독 및 주석에 대한 연구이다. 1942년에 향가 25수 전편을 해독한 『조선고가연구』를 간행하였는데 뒤에 『고가연구』라는 제목으로 바꾸었다. 향가 25수 전편에 대한 해독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이다. 광복 후에는 향가의 해독과 고려가요의 주석을 정정·보충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의 맥박』, 『조선고가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영문학자, 시인.
개설

본관은 남해(南海). 호는 무애(无涯). 아버지는 양원장(梁元章)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황해도 장연에서 보냈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하고(1928), 같은 해 평양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校) 교수로 부임하였다가 일제말 이 학교의 폐쇄로 그 자리를 물러나 1940년부터 경신학교(儆新學校)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에는 동국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1947), 중간에 수년 간 연세대학교 교수로 옮겨 있었던 것(1958∼1961)을 빼고는 종신토록 동국대학교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이 두 학교 이외의 다른 대학들에도 출강하였기 때문에 그로부터 직접 · 간접의 영향을 입은 후학들이 많았다. 1957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54년부터 죽을 때까지 학술원 회원으로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인 및 문학이론가로서 문단에서의 활약이 화려하였으나, 향가 해독에 몰입하면서부터는 주로 고시가(古詩歌)의 주석에 전념하는 국학자로 전신(轉身)하였다. 『금성(金星)』 동인으로 등장하여(1923) 민족주의적 성향의 시를 주로 썼다. 시집 『조선의 맥박』(1930)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데, 그의 시들이 가지는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염상섭(廉想涉)과 함께 『문예공론(文藝公論)』(1929)을 발간하며 시작된 양주동의 평론은 문학사가들에 의하여 절충론이라고 불린다. 염상섭과 박영희(朴英熙) 사이의 문학논쟁을 이어받아 경향파(傾向派)의 기수였던 김기진(金基鎭)과의 사이에 폈던 논전은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고시가에 대한 해독 및 주석에 대한 연구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이기도 한 향가 25수 전편에 대한 해독은 처음에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라는 이름으로 1942년에 간행되었는데, 뒤에는 단순히 『고가연구』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지금 표준으로 잡는 것은 1965년의 개정증보판이다.

1947년에 출판되어 나온 『여요전주(麗謠箋注)』는 『고가연구』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고려가요에 대한 주석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는 평소에 고시가 연구를 3부작으로 간행할 것을 공언하였으나, 그 제3부에 해당하는 것은 끝내 간행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1965년에 출간된 『고가연구』 개정증보판의 증보부분에서 그 제3부의 일부를 볼 수 있다.

광복 후에도 그의 문필활동은 중단되지 않았으나, 왕년과 같은 문학평론의 자리에는 돌아가지도 않았으며, 시작(詩作)도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영문학분야에서의 그의 활동에 대하여서도 거의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영문학 강의와 영시의 번역을 하며 작품집의 편저를 보이기는 하였으나, 영문학연구의 저술을 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향가의 해독과 고려가요의 주석고려가요에 대한 관심은 계속된 정정과 보충으로 지속되었다. 1962년에 나온 『국학연구논고(國學硏究論攷)』에 실린 논문들에 새로운 의견들을 볼 수 있거니와, 『고가연구』나 『여요전주』의 개정판들에 그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참고문헌

『국어연구의 발자취』 Ⅰ(김완진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1985)
『양주동박사고희기념논문집』(무애선생고희기념논총간행회편, 탐구당, 1973)
『증정고가연구』(양주동, 일조각, 1965)
『국학연구논고』(양주동, 을유문화사, 1962)
『여요전주』(양주동, 을유문화사, 1947)
『조선고가연구』(양주동, 박문서관, 1942)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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