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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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현상과 그 변화의 근본원리가 자연(물질)에 있다고 보는 문학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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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자연주의는 세계의 모든 현상과 그 변화의 근본원리가 자연(물질)에 있다고 보는 문학사조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문학사조로서 실재론을 바탕으로 한 이상주의에 반대하는 점에서 사실주의와 혼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실증주의와 결정론, 특히 과학적 실험관찰을 강조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1910년대부터 일본을 매개로 도입되어 일부 작가와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하지만 사실주의와의 혼용이 심하고, 시기적 변천과정이나 사조 구별이 어려우며, 생물학적 인간관과 결정론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불철저함 등의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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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세계의 모든 현상과 그 변화의 근본원리가 자연(물질)에 있다고 보는 문학사조.
내용

이러한 실재론을 바탕으로 이상주의에 반대하고 실증주의와 결정론(determinisme)을 중시하며, 특히 당대 사회의 객관적 묘사와 과학적 방법(관찰과 실험)을 도입 · 강조하는, 19세기 후반(1860-1880)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문학사조.

자연주의는 naturalism(naturalisme)의 역어이다. 사실주의(realism)와 혼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주의를 계승 · 강화하면서 당대 사회의 자료 수집과 객관적 묘사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나, 콩트(Comte, A.)의 실증주의를 문학에 도입한 테느(Taine, H.)의 과학적 법칙, 결정론(決定論), 그리고 과학적 실험과 관찰을 특히 강조한 점에서 사실주의와 일단 식별된다.

고대 철학에서는 유물주의, 쾌락주의, 또는 여러 가지 세속주의를 의미했던 ‘자연주의’의 개념은, 쾌락주의적 무신론자들의 교리(16세기 암브롸르 파레), 신(神) 대신에 유물적 실체를 신봉하는 사상(디드로), 유심론의 반대 개념(1882년 카로), 유심론 내지 범신론 및 자연주의와의 동일시(1839년 생트 뵈브) 등으로 변천되어 왔다.

또는 “제1원리로서 일체를 자연에 돌리는 철학체계”(에밀 리트레의 『프랑스어사전』, 1877), “예술은 오로지 자연의 재현이 아니면 안된다.”(다르메스테르의 『프랑스어 일반사전』, 1889) 등의 사전적 정의로도 정착된다.

자연주의는 예술에서 그 개념이 결정적으로 일반화된다. 먼저 미술계에서, 그 다음에 문학 용어로 정착된다. “자연의 정확한 모방을 주장하는 사고방식”(17세기 미술 아카데미 회합에서 사용), “자연주의파의 가장 빛나는 대표자”(어느 화가의 데생을 평한 보들레르의 말) 등이 처음 사용된 예이다.

그리고 “그 승리가 영원히 보증된다고 한다면, 자연주의가 관찰이라는 과학적 방법에 합치하고 인간정신의 일반적 경향과 조화하기 때문이다”(J.A.카스타냐리, 1867년의 미술전평) 등으로 사용되다가, 졸라(Zola, E.)에 의하여 소설 『테레즈 라캥(Therese Raquin)』(1867) 제2판 서문에 사용되어, 이후 졸라 중심의 사조로 인식되고, 졸라이슴(zola○sme)이라는 개념도 사용된다.

자연주의는 고립 사조가 아니라 시대적 생성 배경, 즉 테느의 과학이론, 베르나르의 실험의학이론, 그리고 당대의 철학적 · 정치적 ·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다. 18세기 전통의 상속자인 이데올로그(1820)의 이성신앙, 낭만주의가 종언의 막을 내린 1830년(7월 혁명)에 우세해진 예술의 사회적 공리론(철학파), 이어 콩트의 『실증철학 강의』(1930∼1942)가 등장하면서 모든 면에서 이성의 현대적 형태인 과학, 실증정신(positivisme) 등이 보편화한다.

발자크(Balzac, H.)와 그의 유파인, 1850∼1860년에 걸친 플로베르(Flaubert, G.)와 샹플뢰리(Champfleury)의 사실주의, 실증철학을 문학에 도입하여 종족(race) · 환경(milieu) · 시대(moment)라는 외적 조건을 문학 생성의 원인으로 제시한 테느(Hippolyte Taine)의 『영문학사』(1856∼1864), 의학이 생리학의 기초이며, 계획적 실험(experimentation)을 강조한 베르나르(Bernard, C.)의 『실험의학 연구서설』(1865) 등이 배경이 된다.

그리고 당시의 다윈(Darwin, C.)주의와 브륀티에르(Brunetiere, F.)의 장르 진화론 등의 과학사상의 유행, 졸라의 이론과 1870년 이후의 제3공화국과의 연결 등이 모두 자연주의 생성 및 발전의 배경이 된다.

자연주의의 중심은 졸라이다. 여기에 모파상(Maupassant, G.), 공쿠르 형제(Edmond et Jules de Goncourt), 도데(Daudet, A.), 극작가 앙리 베크(Becque, H.), 그리고 졸라의 문하에 모여 엮은 문집 『메당의 저녁』(1880) 멤버 5명(레옹 엔니크 · 앙리 · 세사르 · 유이스망스 · 폴 알렉시스 · 에두아르 로드) 등이 참가한다.

이미 스탕달(Stendhal) · 발자크 · 플로베르 · 공쿠르 형제 등 선행 리얼리즘을 읽은 졸라는, 『테레즈 라캥』 등을 쓴 이후, 비로소 전 20권의 『루공 마카르(Rougon-Macguart)』(제2제정하의 한 가족의 자연적 · 사회적 역사 약칭 : 루공 마카르 총서, 1871∼1893)를 계획한다. 이 소설의 변호를 위한 저작을 합치면 30권이나 되며, 그 외의 그의 저작은 겨우 10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테느의 사상과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연구서설』의 영향을 받고 『실험소설론』(1880)을 발표할 때에는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중 이미 9권이 발표되었으나 그 이전에 실험소설론에 관한 장기간 논쟁이 있었음에 비추어 실험소설론이 밑받침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발자크의 『인간희극』(17권, 1842-1848)이 왕정복고 시대와 7월혁명 시대를 묘사했듯이, 제2제정시대(1852-1870)의 전반적 사회상의 묘사를 시도한 이 총서는 발자크 시대보다 더욱 발달한 생물학과 생리학, 유전의 법칙, 실험과학 등이 반영되었다. 물론, 방대한 자료수집, 기록, 객관묘사, 노동자 세계와의 관련(「목로주점」, 1877), 사회비판과 사회주의 시사 등을 내포한다.

모파상의 단편에서는 자연주의에서 일탈된 작품이 있고, 공쿠르 형제는 1860년 이전에 이미 자연주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양쪽에 다 포함되기도 한다. 졸라의 문하에 모여 집단적 자연주의 운동을 전개한 『메당의 저녁』(1880) 그룹과 졸라의 『실험 소설론』(1880)이 발표된 이후, 자연주의는 약 10년간을 주도한다. 그리고 그 영향은 앙리 베크(『까마귀떼』, 1882)를 거쳐 앙토와느(Aotoine, A.)의 자유극장(1876∼1896)의 연극에까지 미친다.

한편 국경을 넘어, 독일의 게르하르트(Gerhardt, H.), 헤르만 주더만(Sudermann, H.), 아르노 홀츠(Holz, A.), 요하네스 쉴라프(Schlaf, J.), 영국의 토머스 하디(Hardy, T.), 조지 무어(Moore, G.E.), 북유럽의 입센(Ibsen, H.), 스트린드베리(Strindberg, J.A.), 미국의 드라이저(Dreiser, T.H.A.), 존 스타인벡(Steinbeck, J.E.)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자연주의 부정적인 요인은 자연주의 안팎에 깃들어 있었다. 안으로는 모파상의 이탈 징조(『여자의 일생』, 1883)와 반대 표명(『피에르와 장』(1888)의 서문)을 우선 보게 되고, 도데의 작품이 자연주의임이 분명하나 과학적 공식과 메당그룹의 극단적 경향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근대적 경향이 도데의 소설에 해당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밖으로는 유심적 · 보수적 · 카톨릭적 당파 및 인상비평, 아나톨 프랑스의 졸라에 대한 공격(무지와 둔중, 예술에의 무관심), 특히 졸라의 제자들에 의한 스카톨로지(분뇨문학)라는 공격 그리고 시대의 변화(상징주의 문학의 발생) 등이 그 것이다. 또 『금전』(1891)에서 자본 집중이 사회주의에 길을 열어 줄 것이라는 졸라의 암시, 노동자 계급의 새로운 영역 개척, 현실참여 등의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오히려 발자크 편을 든다.

한국 근대사의 후진 속에서 1910년대부터 일본을 매개로 자연주의가 도입된다. 일본의 경우,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의 『소설신수(小說神髓)』(1885), 후타바데이 시메이(二葉亭四迷)의 『소설총론』(1886) 등이 리얼리즘 도입의 선구적 저서이고, 졸라의 자연주의는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소설론(小說論)」(讀賣新聞, 1889)에 의해 처음 소개된다.

이어서 고수기 텐가이(小杉天外)의 소설 「뱀딸기(蛇いちご)」(1899) · 「첫 모습」 등이 1900년 전후에 발표되며, 이밖에 가네코 지키수이(金子筑水)의 「自然主義論」(1907), 시마무라 호게쓰(島村抱月)의 「문예상(文藝上)의 자연주의(自然主義)」(1908) 등이 있다. 한국의 경우 자연주의는 사실주의 · 낭만주의 · 상징주의 등과 혼류 · 교착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영국의 의사인 스마일스(Smiles, S.)의 『성행론(性行論)』 번역에서(『少年』, 제2권, 9권, 1909.10.) 인체 해부학의 개조(開祖)에 대한 소개를 비롯하여, 자연주의 생성 배경에 기여할 수 있는 논문들(「구주사상(歐洲思想)의 유래」(필자 미상), 동아일보, 1922.3.10.∼6.22., 朴庸淮, 「자연과학에 대한 인생관」, 개벽 3호, 1920.8., 林房雄, 「과학과 예술」, 개벽71호, 1926.7., 金完熙, 「유전의 힘」, 학지광 27호, 1926.5. 등)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계몽 수준에 머무를 뿐이고 과학문명의 도입(우두종법(1879), 전신시설(1885), 철도 개설(1900))도 과학적 · 유물적 사상의 사회화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리얼리즘과 관련된 용어는 1907년 무렵(白岳春史의 소설 「多情多根」, 태극학보, 1907.1, 夢夢의 소설 「요조오한」, 대한흥학보, 1909.12 등)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재래의 공상적 · 몽상적 · 낭만적 문학에 대한 반동사조로서 자연주의가 도입되는 것은 백대진(白大鎭)의 「현대 조선에 자연주의 문학을 제창함」(新文界, 1915.12)부터인 듯하다. 여기서 그는 현실의 실제 인생 또는 그 부정적인 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공리론적인 문학을 제창한다.

현철(玄哲)의 「소설개요」(개벽1∼2호, 1920.6.∼7.)는 본격적 소설론인 바, 자연주의적(또는 사실주의적) 입장에서 인생 · 사회의 진상 묘사, 특히 한 시기의 국부적, 즉 하층사회의 노동자 계급 묘사를 강조한다(졸라는 「제르미날」(1885), 「大地」(1887), 「금전」(1891) 등에서 노동계층의 묘사와 사회주의를 암시한다.).

양백화(梁白華)는 「호적씨(胡適氏)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문학혁명」(개벽5∼6호, 1920.11.12.)에서 진독수(陳獨秀)와 호적(胡適)의 문학론을 소개한다. 여기서 그는 사실문학 · 사회문학 · 하층민(노동자 계급, 소상인 등)의 고뇌 묘사, 현장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논문에는 과학사상 · 실증주의 · 실험소설론 등에 관한 언급은 없으나, 김억(金億)의 「근대문예」(개벽, 1921.6.∼1922.3.)에 이르러 낭만주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 : 反定立), 현실의 추악성과 수성(獸性)의 묘사, 객관적 관찰과 실험 등을 말하면서 최초로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론과 과학주의 즉 졸라이슴을 소개한 본격적 자연주의론이 전개된다. 사전적 해설이긴 하나 「문학부 80어」(개벽 49호, 1924.7.)에는 자연주의 · 암면묘사(暗面描寫) · 테느의 과학적 비평 등의 항목을 비교적 정확 ·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1920년대에 자연주의소설이 발표되지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요소를 공유한다. 그런 중에서도 테느의 환경법칙과 결정론, 생물학적 인간관이 가장 현저한 작품은 김동인(金東仁)의 「감자」(조선문단, 1925.1.)와 「김연실전(金姸實傳)」(문장, 1939.3.)이다. 전자는 한 여자가 빈곤 · 물욕 · 본능이라는 환경적 · 생물학적 법칙에 몰락하는 과정을, 후자는 생물학적 본능 속에서 타락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현진건(玄鎭健)은 「빈처(貧妻)」(개벽, 1921.1.) · 「술 권하는 사회」(개벽, 1921.11.)에서 주인공이 비록 지식인이지만 식민지 조선사회가 빈곤과 그로 인한 모든 불행의 원천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운수 좋은 날」(개벽, 1924.6.) 등에 이르러 비로소 노동자 계층과 사회성이 암시된다.

최서해(崔曙海)의 「토혈(吐血)」(동아일보, 1924.1.28.)과 「탈출기」(조선문단, 1925.3.) 등에서 이러한 자연주의 원칙들의 일단이 극단화한다. 염상섭(廉想涉)의 「만세전」(1922∼1924)에서는 사회의 지배(일본)와 피지배(조선) 구조, 불가항력적 환경(무덤과 같은 현실)이 제시되고, 「표본실의 청개구리」(개벽, 1921.8.∼10.)의 노이로제(나)와 광인(김창억)은 식민지적 환경법칙의 산물이지만, 청개구리의 해부장면은 졸라의 실험방법의 제시라기보다 식민지 환경이 피지배 민족을 가해하는 범죄의 상징인 듯하다.

한국의 자연주의는 ① 사실주의와 혼용되고 있는 점, ② 시기적 변천 과정이나 개인별 및 작품상 사조 구별의 불투명성, ③ 졸라이슴의 미숙성(특히 실험 소설론의 미숙한 수용), ④ 생물학적 인간관과 결정론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불처저성 등을 내포하고 있다. 폴 알렉시스(Alexis, P.)는 “자연주의는 죽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자연주의라는 용어보다는 리얼리즘이 압도적으로 보편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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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문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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