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학송(鶴松), 아호는 서해(曙海) · 설봉(雪峰) 또는 풍년(豊年). 함경북도 성진 출생. 소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한 그는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내었다. 유년시절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에 3년 정도 재학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학교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소년시절을 빈궁 속에 지내면서 ≪청춘 靑春≫ · ≪학지광 學之光≫ 등을 사다가 읽으면서 문학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이광수(李光洙)의 글을 읽으면서 사숙(私淑)하기 시작하였다.
1918년 고향을 떠나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1923년 간도를 나와 국경지방인 회령에서 잡역부 일을 하기도 하였다.
1924년 작가로 출세할 결심을 하고 노모와 처자를 남겨둔 채 홀로 상경하여 이광수를 찾았다. 그의 주선으로 양주 봉선사(奉先寺)에서 승려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두어 달 있다가 다시 상경하여 조선문단사(朝鮮文壇社)에 입사하였다.
1927년 현대평론사(現代評論社)의 기자로 일하기도 하였고, 기생들의 잡지인 ≪장한 長恨≫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1929년 중외일보(中外日報) 기자, 1931년매일신보(每日申報) 학예부장으로 일하다 사망하였다.
1924년 1월≪동아일보≫ 월요란(月曜欄)에 단편소설 <토혈 吐血>을 발표한 일이 있으나 같은 해 10월≪조선문단≫에 <고국 故國>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토혈>이 처녀작이라면, <고국>은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대략 장편 1편, 단편 35편 내외를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빈궁을 소재로 하여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체로 세 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간도로 유랑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고국>(조선문단, 1924) · <탈출기 脫出記>(조선문단, 1925) · <기아(饑餓)와 살육(殺戮)>(조선문단, 1925) · <돌아가는 날>(1926) · <홍염 紅焰>(조선문단, 1927)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 함경도 지방의 시골을 배경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노동자나 잡역부들의 생활을 그린 소설로 <박돌(朴乭)의 죽음>(조선문단, 1925) · <큰물 진 뒤>(개벽, 1925) · <그믐밤>(신민, 1926) · <무서운 인상(印象)>(동광, 1926) · <낙백불우 落魄不遇>(문예시대, 1927) · <인정 人情>(신생, 1929)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잡지사 주변을 맴도는 문인들의 빈궁상을 그린 소설로 <팔개월 八個月>(동광, 1926) · <전기 轉機>(신생, 1929) · <전아사 錢迓辭>(동광, 1927)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이러한 빈궁상의 제시는 사회의식의 소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체험의 작품화’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빈궁 속에 있는 사람들의 호소와 절규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1920년대 경향문학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