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염」은 조선에서 소작을 하던 문 서방이 서간도로 이주해서 중국인의 소작인으로 살아가다가, 비참한 생활 끝에 격렬한 분노와 광기를 표출하는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문 서방은 빚 때문에 중국인 지주에게 딸을 빼앗긴다. 딸을 빼앗긴 설움으로 병이 난 문 서방의 아내는 딸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중국인 지주 인가〔殷哥〕는 자신을 찾아오는 문 서방의 청을 매번 거절한다. 문 서방은 인가에게 네 번이나 찾아갔으나 거절 끝에 쫓겨나게 된다. 아내는 원한이 맺힌 채 미쳐서 죽는다. 아내가 죽은 이튿날 밤, 문 서방은 인가와 딸이 사는 마을로 가서 인가의 집에 불을 지른다. 문 서방은 그 불길을 바라보며 마음껏 시원하게 웃어 젖힌다. 그리고 불길 속에 허덕이는 인가와 딸을 보자, 문 서방은 도끼를 들고 달려가 인가를 쳐 죽이고 딸을 품에 안는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라고 표현된 마지막 대목은 비참한 생활과 분노, 그리고 광기로 이어지는 처참한 서사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지를 가리키고 있다. 식민지의 조선인들이 겪었던 가난과 빈궁은 이들을 국경 너머로 밀어냈고,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상황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참담한 지경에 내몰렸다. 이 작품은 그 지점을 가장 침울하고 격렬하게 그려낸 최서해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최서해의 문학에 있어서 폭력은 반항의 변증법이자 굶주린 자의 적의(敵意)에서 발생하는 본능적인 행동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들은 환시 또는 착란 상태를 으레 겪게 되는데, 이러한 환상은 가해 관계(加害關係)에 있다고 믿는 대상과 피해자의 그늘들이기도 하다. 홍염 즉 불은 극한에 내몰린 문 서방이 취할 수 있었던 복수의 수단이면서 그의 환상을 현실화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불을 지르는 행위를 통해 오염과 부정을 모두 태워 정화시키면서 부당한 현실을 소멸시키는 것이 극한 상황에 몰린 문 서방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가혹했던 중국인 인가에게 복수하고 딸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불의 정화로 얻은 미래였던 것이다.
「홍염」은 신경향파 문학을 견인했던 최서해의 대표작 「탈출기(脫出記)」( 『조선문단』, 1925.3), 「기아(飢餓)와 살육(殺戮)」(『조선문단』, 1925.6)과 함께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참담한 현실을 예리하면서도 둔중하게 그려냈다. 박영희와 김기진 등 카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주요 비평가들은 이를 프로문학의 예비적 단계로 평가하고 신경향파로 명명했다. 이 소설은 이후 주1이고 조직적인 프로문학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