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찬성사,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처남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 형제가 신극례(辛克禮)와 함께 종친을 이간하고 불충(不忠)의 언동이 있었다고 하여 이화(李和) 등의 탄핵을 입어 유배, 사사(賜死)되자, 이에 연좌되어 1409년에 파직당하였다.
이에 양주별장에서 14년간을 은거하였는데 1422년(세종 4)에 상왕 태종이 “노한이 민씨에게 장가를 들었다고 고신(告身)까지 거두게 된 것은 그의 죄가 아니니 급히 불러들이라.”는 전교에 의하여 다시 한성부윤에 복관되었다.
그 뒤 형조판서·참찬의정부사·판한성부사를 거쳐, 1432년에 우찬성사 1434년에 찬성 겸 대사헌, 이듬해 우의정 등을 지내고, 1437년에 사직하였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대동기문(大東奇聞)』
- 『이락정집(二樂亭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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