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5년(현종 6)에 간행된 그의 문집 『농암문집(聾巖文集)』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이현보는 영남사림(嶺南士林)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한 첫 세대였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늘 강호(江湖)로 돌아가고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만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그의 향리인 예안(禮安)에 돌아가, 집 주위에 명농당(明農堂)을 짓고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모방하여 「귀전록(歸田錄)」을 지었는데, 이는 「효빈가(效嚬歌)」·「농암가」·「생일가(生日歌)」 3수와 그에 대한 해제로 되어 있다.
「농암가」는 관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과 어울리는 기쁨을 노래한 작품이다. 작자가 서울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 고향에 다시 돌아가서 농암에 올라 산천을 두루 살피니, 그의 옛 자취가 너무나 의연함에 기뻐서 이 노래를 지은 것이다. 이현보는 이같은 귀전(歸田)의 생활 속에서 한국시가문학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강호가도(江湖歌道)의 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