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필사본. 저자의 사후에 아들 득녕(得寧)이 유문을 수습하여 편찬한 것이다. 경상북도 예천의 미산고택(味山古宅)과 영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시 350수, 잡저 8편, 기(記) 4편, 서(書) 9편, 권2는 부록으로 행기(行記) 1편, 묘갈명 1편, 만시(輓詩) 72수, 제문 5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이 시로서 김천범(金天範)·권술모(權述模)·권현도(權玄度)·정광연(鄭光淵) 등 당시 영남의 교우들과 시를 지어 주고받은 것이 많고, 경물(景物)·차운(次韻)·만시·자연시 등이 다양하게 들어 있는데, 「오려잡영(吾廬雜詠)」은 12수로 저자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의 자연경관을 자신의 생활에 대입하여 노래한 것이며, 「구산팔경(龜山八景)」은 단양팔경을 두루 유람하면서 읊은 것으로 운치 있는 묘사가 생동감을 자아낸다.
소리개가 공중에서 맴돌다가 병아리를 채가는 광경을 묘사한 「연(鳶)」, 사월 초파일에 사찰의 관등놀이를 보고 읊은 「관등(觀燈)」, 정월초하룻날 인사(人事)를 닦는 세시풍속을 서사적으로 다룬 「원일(元日)」 등이 매우 흥미를 끈다. 비교적 시의(詩意)가 청신(淸新)하면서도 고졸(古拙)한 맛이 있다는 평이 있다.
잡저의 「유루기(遺漏記)」는 전토(田土)를 매입해가면서 서책(書冊)과 혼함(婚函)을 비치한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단구유산록(丹邱遊山錄)」은 단양팔경을 유람한 기행문인데, 산수절경을 다채롭게 서술하고 있다.
부록의 행기는 아들 득녕이 썼으며 묘갈명은 김흥락(金興洛)이 찬(撰)하였고, 저자의 죽음을 애도한 만시와 제문은 120여 편으로 당시 많은 석학들과의 교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