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28∼77. 온조왕의 맏아들이며. 제3대 기루왕의 아버지이다. 10년(온조왕 28) 태자가 되었다가 온조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성격이 관대하고 후덕하며 위망(威望)이 있었다고 한다. 다루왕 치세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말갈(靺鞨)과의 전투가 자주 나타난다. 이 말갈의 실체는 알 수 없으나, 백제를 건국한 부여족(扶餘族)이나 백제에 복속된 마한과도 다른 부류로 생각된다.
이들 말갈은 전대(前代)부터 낙랑(樂浪) 등 한군현(漢郡縣)의 사주를 받기도 하며 백제를 침공하고 있었다. 이는 아직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작은 세력에 불과하였던 다루왕 때의 백제가 이러한 외세와의 대결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3년(다루왕 6) 남부 주군(州郡)으로 하여금 벼농사를 짓게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 청동기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던 벼농사가 어떠한 계기로 이때 크게 장려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63년 낭자곡성(娘子谷城 :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까지 영토를 넓히고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만나기를 청하였다고 하나, 당시의 백제 상태로 볼 때 믿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