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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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백제 정벌 당시의 장수.
인물/전통 인물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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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의 백제 정벌 당시의 장수.
내용

660년(태종무열왕 7)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할 때, 태자 법민(法敏 : 문무왕)이 대장군 김유신(金庾信), 장군 품일(品日)·흠춘(欽春)·진주(眞珠)·천존(天存)·양도(良圖) 등과 함께 장군으로 출정하였다.

이들은 황산벌에서 백제의 계백(階伯)이 거느린 5,000 결사대를 전멸시키고 진격하여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 백제를 멸망시켰다. 원정군을 총지휘하여 경주를 출발한 무열왕은 6월 18일 남천정(南川停)에 이르러 대군을 진격시키고, 금돌성(今突城)에 머물러 있다가 백제의 항복소식을 듣고 7월 29일 소부리성(所夫里城: 충남 부여)에 입성하였다.

이때 당나라 군대는 백제를 멸한 뒤 신라를 정복하려고 하매 신라왕이 여러 장수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하니, 다미가 아군으로 하여금 백제군으로 위장시켜 당군을 공격하게 하면 당군이 공격할 것이니, 그때 함께 싸우면 당군을 제압할 수 있다고 계략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왕은 당군이 우리를 위하여 적을 멸하였는데, 도리어 당군을 친다면 하늘이 우리를 돕겠는가 하였다. 이에 유신이 “개가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것”이라 하여 다미의 계략을 따르기를 주장하였다.

이에 다미의 계책이 받아들여지고 당군과 싸울 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이에 당군이 이 사실을 알고 신라정벌을 취소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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