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회(多繪)는 끈목을 뜻하는 용어이다. 다회의 단면 형태에 따라 둥근 단면의 끈목은 동다회와 원다회로 구분되며, 단면이 납작하고 넓은 것은 광다회, 납작하나 폭이 좁은 것은 방다회 또는 방승아로 불렸다. 다회에 관한 기록은 조선 초기부터 나타나지만, 다회를 짤 수 있는 다회틀의 실물 유물은 둥근 접시가 설치된 것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풍속화와 사진, 문헌 등의 자료를 통해 광다회의 직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김준근의 풍속화에 그려진 두 대의 동다회를 동시에 짤 수 있는 반자동식 다회틀은 매우 특이한 구조의 다회틀이다.
다회(多繪)는 끈목을 뜻하며, 여러 모양으로 짠 끈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다회는 조선 초기의 문헌에서부터 기록이 나타나고 있는데, 면관(冕冠), 교명(敎命), 도자(刀子), 주머니 등 다양한 물품에 장식 또는 실용적인 기능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다회를 짜는 장인인 다회장(多繪匠)은 조선시대에는 경공장에 편성되어 있을 정도로 주요 기능을 갖춘 장인이었다. 조선시대의 다회장은 명주실을 풀어 끈목을 만들며 영자(纓子)의 끝에 장식하는 술까지 제작하였으며, 매듭장은 그 끈목을 사용하여 매듭을 짓기만 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 이후 복식과 사회 전반의 문화가 현대화되면서 다회의 사용이 축소되어 현재는 주로 매듭의 소재로만 여겨지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매듭장이 다회장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이에 ‘다회’라는 용어는 거의 잊혀졌으며 국가무형유산 종목에서도 ‘매듭장’은 1968년에 정연수 선생을 최초 보유자로 인정하는 것을 필두로 현재까지 존속되고 있으나 ‘다회장’은 인정되지 못하여 전승이 단절되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다회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통 다회의 다양한 기법에 관한 실증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회에 관한 문헌 기록은 1425년에 ‘향관토환다회(香串吐環多繪)’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으며, 다회와 관련된 용어로는 동다회, 원다회와 방다회, 그리고 광다회가 있다. 다회는 형태에 따라 단면이 둥근 형태의 끈목은 동다회(童多繪, 同多繪, 東多繪) 또는 원다회(圓多繪)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同/童/東은 ‘동’의 음가자로, ‘동고리다[圈了]의 ’동‘이며, ‘둥글다’라는 뜻의 동을 ‘圓’으로 한자화하여 ‘圓多繪’로도 표기하였다. 단면이 평편하고 납작한 형태는 광다회(廣多繪)로 알려져 있는데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는 ‘너븐다회’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단면이 납작하나 폭이 좁은 방다회(方多繪)가 있다. 『역어유해』에 의하면 ᄫᅡᆼ싱ᅀᆞᆯ[方勝兒]을 ‘‘四面ᄆᆡ즙’라고 하여 방승아 역시 폭이 좁고 납작한 끈목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다회를 직조하는 것을 ‘다회 치다’라고 표현하였다.
동다회는 일종의 엮음직으로 직조하는 올 수에 따라 4사, 8사, 16사, 24사 등으로 구분되는 반면, 방다회와 광다회는 평직, 중조직(重組織), 편직(編織), 엮음직 등 다양한 기법으로 직조되었다. 그리고 신창동 유적, 천마총을 비롯한 고대 고분에서도 여러 종류의 다회가 출토되었으며 지금도 실용과 장식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다회틀의 실물 유물은 많지 않다. 동다회는 4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둥근 접시가 놓인 다회틀에서 직조한다. 현존하는 다회틀의 실물 유물은 궁중에서 사용하던 발우(鉢盂) 형태의 나무로 만든 다회틀과 전 매듭장 김희진 보유자가 전북 남원에서 박용학 선생으로부터 다회치기를 배우면서 복사하여 만든 다회틀이 있다. 이 다회틀에서는 동다회뿐만 아니라 방다회의 직조도 가능하다.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은 조선 말기의 화가이며 주로 서민들의 의례, 생산 활동 등의 생활 모습을 그렸고, 당시 우리나라에 와 있던 외국인들에게 판매한 풍속화가이다. 그는 다회 치는 장면을 여러 장 그렸다. 독일 동베를린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팔사치는모양’의 그림에는 4사 치는 사람과 두 대의 다회틀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일종의 반자동식 다회틀에서 8사를 짜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주머니ᄭᅵᆫ친며듸치는모양’에는 한 대의 다회틀에서 8사를 짜고 있는 인물과 ‘목팔사치는모양’에 표현된 다회틀과 비슷한 반자동식 틀에서 작업하고 있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다회틀 두 대를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구조의 직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직기이다.
광다회의 직기는 실물 유물은 남아있지 않으나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준근의 ‘요대치는모양’의 그림과 1984년 한국방송공사와 숭례원이 주최를 한 제3회 ‘전국할아버지, 할머니 전통수공예작품전’에서 대상인 보건사회부장관상을 수상한 당시 76세의 김점아 할머니의 ‘광다회’ 작품 사진이 있다. ‘요대치는모양’과 김점아의 직기는 매우 비슷한 구조이나 김점아의 광다회 직기에는 작은 비경이와 잉아가 부착되어 있어 더 편리하게 직조할 수 있는 직기이다.
허리에 두르는 광다회를 ‘대자(帶子)’라고도 하였는데 『규합총서』에는 “대자 허리띠를 짜는 데 6척 5촌으로 날면(정경하면) 4자 남짓이 되는데 무늬를 놓으려면 참빗으로 바디를 하고 잉아 셋을 건다.”라고 설명하고 있어 바디와 잉아를 사용하여 납작한 광다회를 직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무늬가 들어간 중조직의 광다회는 유물로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