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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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개시를 지칭하는 용어.
이칭
이칭
단개시
속칭
회령개시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638년(인조 16)
시행 시기
조선 후기
폐지 시기
고종 대
내용 요약

단시는 조선 후기에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개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회령개시의 이칭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인 1638년(인조 16)부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회령과 경원에서 청나라와 무역이 이루어졌다. 이때 회령개시는 1년마다 열렸고, 경원개시는 2년마다 열렸다. 회령개시만 열릴 때를 단시, 회령개시와 경원개시가 같이 열릴 때를 쌍시라고 불렀다. 단시는 자년(子年), 인년(寅年), 진년(辰年), 오년(午年), 신년(申年), 술년(戌年)이 든 해에 열렸다. 이곳에서는 농우(農牛) · 농기(農器) · 식염(食鹽) 등을 무역하였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 함경도 회령에서 열린 개시를 지칭하는 용어.
내용

조선 후기 두만강변을 사이에 두고 조선 사람과 청나라 사람 사이에서 개시가 전개되었다. 하나는 회령개시이고 다른 하나는 경원개시이다. 회령개시는 1638년(인조 16)에 시작되었고, 경원개시는 1645년(인조 23)에 시작되었다.

회령개시만 개설될 때에는 단시(單市) 혹은 단개시(單開市)라고 부르고, 회령개시와 경원개시가 함께 개설되면 쌍시(雙市) 혹은 쌍개시(雙開市)라고 부른다. 회령개시는 매년 열리는 데 비하여 경원개시는 2년에 한번 열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경원개시와 회령개시는 개시를 운영하는 면에서 비슷하다. 다만 개시가 열리는 해가 달라서 경원개시는 2년에 1번씩, 회령개시는 1년에 1번씩 열렸다. 『만기요람』에 따르면 단개시는 자년(子年), 인년(寅年), 진년(辰年), 오년(午年), 신년(申年), 술년(戌年)이 든 해에 열렸고, 쌍개시는 축년(丑年), 묘년(卯年), 사년(巳年), 미년(未年), 유년(酉年), 해년(亥年)이 든 해에 열렸다. 회령개시에서는 주1 · 주2 · 주3 등을 무역하였다.

2차례 개시에서 지출되는 비용을 보면 쌍시는 쌀 2,339석, 주4 주5, 주6 주7 주8, 주9 24동 7필, 동전 10냥이 들었다. 단시에는 쌀 1,670석, 각곡 983석, 백목 19동 6필, 사승포 20동 4필, 동전 10냥이 들었다.

경원개시와 회령개시는 모두 함경도에서 관할하였으므로 경원개시와 회령개시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보다 단시와 쌍시라는 용어를 더 빈번하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회령개시만 열리는 해에는 단시로, 경원개시와 회령개시가 모두 열리는 해에는 쌍시라고 부른 것은 경원개시와 회령개시의 구분이 관리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단시와 쌍시라는 용어는 고종 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의의 및 평가

전근대에 두만강이라는 국경 지대에서 이루어진 공무역의 실태와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참고문헌

원전

『만기요람(萬機要覽)』
『북새기략(北塞記略)』

논문

고승희, 「18~19세기 북관개시의 운영과 성격」(『한국사연구』 109, 한국사연구회, 2000)
고승희, 「조선후기 북관개시 연구」(『조선시대사학보』 1, 조선시대사학회, 1997)
김영숙, 「회령개시에 관한 연구」(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9)
주석
주1

농사일에 부리는 소.    우리말샘

주2

농사를 짓는 데 쓰는 기구.    우리말샘

주3

먹는 소금.    우리말샘

주4

여러 가지 곡식.    우리말샘

주5

부피의 단위. 곡식, 가루, 액체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석은 한 말의 열 배로 약 180리터에 해당한다.    우리말샘

주6

목화솜으로 만든 실로 짠 천.    우리말샘

주7

물건을 묶어 세는 단위. 한 동은 먹 열 정, 붓 열 자루, 생강 열 접, 피륙 50필, 백지 100권, 곶감 100접, 볏짚 100단, 조기 1,000마리, 비웃 2,000마리를 이른다.    바로가기

주8

일정한 길이로 말아 놓은 천 뭉치를 세는 단위.    우리말샘

주9

석새베보다 품질이 좀 더 나은 삼베. 320올의 날실로 짜는데, 삼베 가운데 품질이 낮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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