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요청으로 조선에서는 북쪽 여러 곳에 시장을 두고 통상을 계속하였으나, 경원에서 정식으로 시장을 개설한 것은 1645년(인조 23) 암구뢰달호호(巖丘賴達湖戶)의 사람들이 농기구를 무역해가면서부터였다.
『통문관지(通文館志)』에 의하면 격년제로 하여 을(乙)·정(丁)·기(己)·신(辛)·계(癸)의 해에 회령·경원의 두 곳에서 병설개시(竝設開市)되었으므로 쌍시(雙市)라고도 하였다.
이때는 소록피(小鹿皮)를 가지고 와서 소·보습·솥 등과 교환하였으며, 그 비율은 보습 1개에 소록피 2장, 솥 1개에 소록피 1장이었다. 조선으로부터의 수출품은 생활필수품과 중요한 생산수단인 소를 공급하는 것이었고, 수입하는 것은 청포·녹비 등이었다.
이처럼 정해진 수량에 한하여 무역을 허락하는 대신 사무역은 일체 엄금하였던 것이나, 점차로 민간상인에 의한 밀무역이 성행하게 되었다.
개항을 전후해서 양국의 무역품을 보면 청나라측에서는 조화(造花)·피혁·담뱃대··녹각(鹿角)·동(銅)·수석(燧石)·개·고양이 등이었고, 조선측에서는 소·말·돼지·쌀·종이·연(筵)·농(籠)·주방구·호피·해삼·모발·재목 등이었다. 경원개시는 회령개시(會寧開市)와 함께 북관개시(北關開市)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