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길이 1㎞. ‘금마굴’·‘까치굴’·‘박쥐굴’·‘고습굴’ 등으로 불려왔다.
임진왜란 때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나선 밀양(密陽) 박씨(朴氏)가 이곳을 지나다, 숲이 우거지고 한강 상류의 풍치가 아름다워 여기를 안식처로 삼은 것이 오늘의 고수 마을의 발달을 가져온 것이라 전한다.
이 동굴의 첫 탐사는 1973년 10월한국동굴학회의 조사단에 의하여 실시되었는데, 그 때 동굴 입구 부근에서는 타제석기와 마제석기가 발견되었다. 한강 연안 가까운 곳에 있고, 동구(洞口)가 남향으로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선사 시대의 주거지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질은 고생대의 조선계대석회암통(朝鮮系大石灰岩統)의 중간에 속하는 두무골[斗務洞] 석회암층이며, 지질 연대는 약 4억∼5억년 전이다.
696m의 등우봉(燈牛峯)이 서쪽으로 뻗어 남한강의 메안다네크를 이루는 남쪽 사면 기슭에 있으며, 바로 밑에는 금곡천(金谷川)이 흘러 남한강에 흘러들고 있다. 이 동굴은 동굴 내부의 공동(空洞)에 가득차 있던 지하수의 용식작용(溶蝕作用)과 이 지하수가 투수층(透水層)을 뚫고 흘러내리면서 한 침식작용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졌다.
동굴 내부에는 수호신으로 모시는 사자상의 기암을 비롯하여, 웅장한 종유폭포(鍾乳瀑布)를 이루는 유석(流石), 선녀탕(仙女湯)이라 불리는 석회화단구(石灰華段丘)의 동굴소(洞窟沼), 7m 길이의 종유석과 석순·석주 등의 2차 생성물이 많다.
그 밖에도 천연교(天然橋)·곡석(曲石)·석화(石花)·동굴산호(洞窟珊瑚)·동굴진주(洞窟眞珠)·동굴선반·아라고나이트(霰石) 등의 희귀한 동굴퇴적물도 많다.
이곳은 이와 같이 동굴 생성물의 모든 것을 한눈으로 볼 수 있어, 1976년에 개발하여 관광 동굴로 개장하고 있으며, 자연 학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