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협축 성곽. 산성.
개설
산성은 해발 427m의 성산(城山) 정상부에 반월형(半月形)으로 축조된 테뫼식 협축(夾築) 산성이다. 성벽은 남고북저의 지형을 따라 쌓았는데, 남쪽 봉우리 정상부와 북쪽 벽의 안쪽에는 평탄한 땅이 자리하고 있다. 서북쪽은 남한강에 접한 가파른 절벽이며, 동쪽과 남쪽 성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쌓아 올렸다.
산성의 북동쪽 아래에는 온달동굴(천연기념물, 1979년 지정)이 있고, 강 건너 주변 지역에도 휴석동 윷판바위, 장발리 선돌 등 온달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영월 태화산성(太華山城)은 온달산성에서 패한 온달을 위하여 누이동생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서 이 산성은 물론 주변 지역이 신라와 고구려가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대치하였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 변천
내용
성벽은 대부분 비슷한 크기로 다듬은 네모난 석회암 널돌을 면과 모를 맞추어 수직에 가깝게 쌓은 모습이다.바깥쪽 경사면 아래부터 일정한 높이까지 체성을 축조하고서물이 나가는 수구(水口)를 안쪽 바닥돌 아래까지 경사지게 만든 다음 위쪽에 체성의 안팎을 협축의 방식으로 쌓아 올렸으며, 성벽의 안은 돌로만 채웠다. 동쪽과 남쪽 성벽은 높이 6∼8.5m, 너비 3.6∼4m 정도가 남아 있고, 북문터와 회절부의 성벽은 계곡에 쌓은 것이어서 너비가 다른 구간에 비해 넓은 편이다.
치성은 북문터와 남문터 부근에 있는데, 아래부분은 길이 5.2m, 너비 5.3m, 높이 8m이며, 단면 삼각형으로 바닥을 보강하여 쌓았다. 문터 옆의 성벽에는 출수구가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한 좌우 성벽과 북쪽벽 구간에는 아래부분에 보축이 이루어졌으며, 보축된 벽면 안에는 깬돌과 점토를 혼합하여 채워 넣었다. 남치성과 북치성은 같은 모습 같은 규모이다. 남문터는 남동향으로 경사진 지형에 자리하였는데, 규모는 길이 6m, 너비 3.9m로 북문터와 같다. 동문터는 너비가 7.3m으로, 현문식(懸門式) 구조로 설치되었으나 뒤에 암문(暗門)으로 사용되고서 메워진 것으로 밝혀 졌다. 배수구는 입수구, 배수로, 출수구를 연결시켜 만들었는데, 입·출수구 모두 사다리꼴 형태이며, 출수구가 입수구에 비해 약간 크다. 배수로의 바닥에는 널돌을 놓았고, 돌틈 사이를 점토로 메워 성벽 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온달산성-북문지·북치성·수구 시굴조사 보고서-』(충북대학교박물관, 2003)
- 『신라육상교통로연구』(서영일, 학연문화사, 1999),
- 『한국의 성곽과 봉수』상(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1990)
- 『온달산성 지표조사보고서』(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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