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엄사(曇嚴寺)라고도 한다. 신라시대 전불칠처가람(前佛七處伽藍) 가운데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서청전(壻請田)에 있었던 사찰로 창건연대는 신문왕 때로 추정된다. 서청전은 ‘사위 맞아들인 밭’이라는 뜻을 지닌다.
위치는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의해 지금의 오릉(五陵) 남쪽으로 비정된다. 그 뒤 이 절은 고려 중기까지 7대사찰의 하나로서 중시되어 오다가 차차 퇴락하여 조선시대에 이르러 폐사가 되었다.
사지에는 삼층석탑 1기와 당간지주·초석 등이 남아 있었는데, 민족 항일기에 사지 중앙을 관통하는 길을 내면서 이 절터는 거의 파괴되었다.
또, 당간지주와 초석 등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제전인 숭덕전(崇德殿)을 건립할 때 사용하였으며, 파손된 탑의 팔부신중(八部神衆)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현재 절터 주변은 모두 농경지로 변하여 있으나 옛 6촌 시절에는 이곳에 알영양산촌(閼英楊山村)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