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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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비로서 면천되어 양인(良人)이 되고자 하는 자가 자기 대신 다른 노비를 납부하던 제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순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노비로서 면천되어 양인(良人)이 되고자 하는 자가 자기 대신 다른 노비를 납부하던 제도.

내용

대구속신(代口贖身)의 방법으로 종량(從良)할 수 있는 자격은 제한되어 있어서, 우선 본인이 공노비이어야 하고 왕족후손·양반자손·승음자(承蔭者) 등과 같은 양반의 혈통일 경우에만 가능하였다.

그러나 예외로 양반이 아니더라도 3대에 걸쳐 종량되었던 자에게는 자격이 주어졌다. 위의 여러 경우 가운데 왕족후손의 대구속신만 그 적용범위가 명시되어 있는데, 6대 이내는 속신하지 않아도 종량이 되었고, 7대부터 9대까지, 그리고 외손으로 6대 이내가 대상이 되었다.

대구를 할 때는 법례에 따라 노는 노로, 비는 비로서 나이가 상응하는 자를 대신해야 하였다. 대구로 속신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이름만 남아 있는 자, 자기의 노비가 아닌 자, 또는 송사에 걸려 있는 노비 등을 대납하려는 범법행위로서 이러한 경우 모두 무거운 벌에 처하여졌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속대전(續大典)』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朝鮮後期奴婢制硏究』(平木實, 知識産業社,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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