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太古宗)의 개조이다. 밀양 박씨(密陽朴氏). 속명과 법명은 대륜, 법호는 법운(法雲)이다. 중보(仲甫)의 아들로, 어머니는 경주 김씨이다. 강원도 고성 출생.
1898년 4월금강산유점사(楡岾寺)로 출가하여 낭운(朗雲)의 제자가 되었고, 같은 해 사월초파일 동선(東宣)을 계사(戒師)로 삼아 사미계(沙彌戒)를 받았으며, 1900년 10월 유점사에서 안거(安居)에 참여한 이래 47년 동안 수행하였다.
1908년 3월 유점사 불교전문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였고, 1909년 3월서울 수송동 각황사(覺皇寺) 원주(院主)를 자원하여 탑골공원의 원각사(圓覺寺) 복원 또는 사직공원에의 대가람 건립을 위하여 천일기도를 행하였다.
1915년 4월평양 창전리에 유점사 포교당을 설립하였고, 1917년 3월 일본 불교계를 시찰하였다. 1919년 7월 각황사에서 ≪금강경≫을 지송하던 중 치사리(齒舍利)가 나와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928년 1월서울 사간동에 법륜사(法輪寺)를 창건하였고, 1929년 7월≪화엄경≫ 산림법회(山林法會)를 개설하고 자은방생회(慈恩放生會)를 조직하였다. 1940년 4월금강산 유점사에서 대종사(大宗師)의 법계(法階)를 받았고, 1945년 4월 유점사 주지로 취임하였으며, 1950년 10월 불교 이북5도연합 교무원장이 되었다.
1954년 비구승과 대처승의 분규가 발생하자 정법수호를 위하여 힘을 기울였다. 1956년 2월 동국대학교 재단이사로 취임하였고, 1956년 5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직을 맡았으며, 1960년 6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여 세 번 유임하였다.
1970년 1월 불교분규로 단일종단의 형성이 불가능함을 느끼고 비구승이면서도 대처승 계열인 한국불교태고종을 창종하여 분쟁을 종식하고 균등한 발전을 이루도록 결단을 내렸으며, 태고종의 종정(宗正)에 취임하였다.
1975년 7월 한국불교태고종 원로원장에 취임하였고, 7월 1일 법륜사에서 입적하였다. 7월 20일 다비(茶毘)하였는데 사리 5과(顆)가 나왔다. 그는 고려 태고 보우(太古普愚)의 21세 법손(法孫)으로, 참선·간경(看經)·염불·주력(呪力)·기도 등을 고루 닦았고, 항상 선교겸수(禪敎兼修)할 것을 가르쳤다.
한국불교의 대중화·현대화·생활화와 청년불교운동의 선봉이 되었던 그는 ① 질서 있는 대화합(大和合), ② 총지(總智)를 모은 전법교화(傳法敎化), ③ 대중을 위한 교법(敎法)의 개발과 계율 준수, ④ 스승에 대한 존경, ⑤ 수행실천과 효경(孝敬)의 겸비, ⑥ 금욕(禁慾), ⑦ 명리를 떠난 보살행(菩薩行)의 실천 등을 지표로 삼았다.
특히 인재양성을 위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는데 약 100명의 직계제자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제자로는 덕암(德庵)·용봉(龍峰)·무불(無佛)·정암(靜巖)·남허(南虛)·본공(本空)·현암(玄庵)·석천(石泉)·승종(乘宗)·범호(梵虎)·이영무(李英茂)·이재복(李在福)·김재수(金在壽)·김준열(金俊烈) 등을 꼽을 수 있다. 사리탑은 북한산 태고사(太古寺)에 있으며, 탑비는 법륜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