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흥산 대조사

  • 종교·철학
  • 유적
  • 삼국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聖興山)에 있는 삼국시대 에 창건된 사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위석 (전 경북대학교, 철학)
  • 최종수정 2024년 06월 24일
부여 대조사 미디어 정보

부여 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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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산(聖興山)에 있는 삼국시대 에 창건된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부여읍지(扶餘邑誌)』에 의하면 이 절은 인도에 가서 범본(梵本)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와서 백제 불교의 방향을 달리한 겸익(謙益)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사적기를 참작하여 기록한 현판에 의하면 이 절은 527년 담혜(曇慧)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창건주에 대한 설은 다소 다르지만 이들이 모두 6세기 초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이 절은 고려 원종 때 진전장로(陳田長老)가 중창하였고, 그 뒤 1989년에는 명부전, 1993년에는 종각, 1994년에는 미륵전을 각각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용화보전 · 명부전 · 산신각 · 범종각 ·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 뒤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한 노승이 이 바위 밑에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한 마리의 큰 새가 바위 위에 앉는 것을 보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하여 있었으므로 이 절을 대조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절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조사 석탑이 있다. 이전에는 옥개석(屋蓋石)만 있었으나, 1975년 옥신(屋身)이 발견되어 복원하였다. 대조사 석탑은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 『전통사찰총서』 12(사찰문화연구원, 1999)

  • - 『명산고찰(名山古刹) 따라』(이고운·박설산, 우진관광공사, 1982)

  • -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 상(上)(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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