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국내 테니스경기의 보급과 발전을 도모하고, 이를 관장하는 경기단체.
개설
그 뒤 1930년 9월 초 오한영(吳漢泳)·강성태 등 10여 명의 발기로 ‘서울경구구락부(硬球俱樂部)’를 조직함으로써 최초의 테니스단체가 탄생하였다.
연원 및 변천
그리고 이듬해 제1회 전국경식정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1948년 ‘대한테니스협회’로 개칭하였으며, 같은 해 국제테니스연맹에 가입하여 세계무대로 진출을 꾀하게 되었다. 또 1968년 아시아테니스연맹에 가입하였다.
한편 1968년 5월 한국실업테니스연맹·한국대학테니스연맹·한국 중고테니스연맹, 1971년 6월 한국여자테니스연맹, 1987년 9월 한국베테란테니스연맹, 1994년 5월 한국초등학교테니스연맹 창설하였고, 1994년 10월 17일 문화체육부로부터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승인받아 11월 8일 사단법인이 되었다.
설립목적
기능과 역할
협회의 조직은 기구로 이사회·대의원총회·사무국이 있고, 회장 1인, 부회장 4인, 전무이사 1인, 이사 22인, 감사 3인 등 모두 31명의 선임임원과 26명의 대의원 및 위촉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하연맹체로는 한국실업연맹·한국대학연맹·한국중고연맹·한국초등연맹·한국여자연맹·한국베테란연맹이 있다.
1960년부터 최고 권위의 남자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대회에 선수단를 파견하기 시작하였으며, 1973년부터는 여성국가대항전인 페드컵대회에 선수단를 파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1년 아시아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단체·남자단식·여자단식에서 우승하였고, 1982년과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중요한 업적을 쌓았다.
1970년대 이전까지는 국내의 여건상 큰 발전을 보지 못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불어닥친 테니스의 열기에 편승하여 협회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1999년 말 현재 협회에 등록된 팀수는 409개이며, 선수수는 2,243명이고, 동호인수는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협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다.
참고문헌
- 『한국운동경기사』(나현성, 문천사, 1963)
- 『테니스』(김계환, 문교부, 1975)
- 『한국체육사연구』(나현성, 교학연구사, 1981)
- 『대한체육회70년사』(대한체육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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