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전각.
내용
1897년 고종이 경운궁(慶雲宮, 현 덕수궁)으로 옮겨온 뒤 정전(正殿)으로 사용되었고, 한때 태극전(太極殿)·중화전(中和殿)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이 건립된 뒤부터는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904년 불이 나 타 버린 것을 같은해 3월에 중건한 것이다. 고종이 상왕이 된 뒤 거처하던 궁궐로서 궁명(宮名)을 덕수궁으로 바꾼 뒤인 1907년부터 1911년까지는 후비인 엄비(嚴妃)가 이곳에 거처하였다.
건물의 위치는 대내(大內: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 중앙 북쪽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중화전의 바로 뒤에 높은 돌기단을 쌓고 세웠다. 준명당(浚眀堂)과 복도 및 난간으로 연결되어 복합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건물의 오른쪽과 뒤쪽에 각각 가퇴(假退)를 덧달아 내놓아 평면을 확장시키는 수법을 쓰고 있다.
정면을 기준으로 평면구성을 보면 준명당과 복도로 연결된 맨 오른쪽 한 칸은 한 단 높게 구성된 누마루이며, 오른쪽 두 칸은 방과 방에 부속된 퇴이고, 그 옆은 대청과 개방된 현관, 맨 왼쪽 한 칸은 방이다. 한편, 현관 앞 처마 밑에는 ‘즉조당(卽阼堂)’, 대청 앞 기둥 위쪽에는 ‘경운궁(慶運宮)’이라고 쓴 현판을 걸어놓았다.
건물의 구조는 먼저 기단부터 보면 긴 댓돌을 바른켜쌓기로 쌓은 높은 기단으로, 윗면에는 네모 전돌을 깔았으며 대청에 맞추어 기단 앞쪽에 3줄의 계단을 배열하였다. 주춧돌은 네모뿔대모양으로 이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다.
귀기둥을 기준으로 건물의 구조를 보면, 기둥 윗몸을 창방에 연결하여 짜맞춘 다음 기둥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이 위에 당초무늬를 새긴 부재를 놓아서 가로로 댄 둥근 모양 주심도리(柱心道里)와 직각 방향으로 걸친 둥근 모양 보를 아울러 받치고 있다. 쇠서[牛舌] 없이 초각(草刻)된 부재만을 써서 초익공식을 택하였고 기둥 사이 창방 위에는 소로를 놓아서 장여를 받치고 있다.
공포대(栱包帶)에 칠해진 단청은 녹색과 적색을 썼으며, 청색과 밝은 황색의 대비적 사용으로 밝은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 위의 처마는 겹처마이며, 팔작지붕마루는 양성을 하지 않고 착고·부고·적새 등을 켜로 쌓아 단정하게 구성하였다. 이 건물의 전체적인 구성은 복도와 난간으로 연결된 준명당과 함께 계획된 것이며, 후원에 남아 있는 굴뚝은 주변의 풍치를 더하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고궁건축』(장경호 외, 열화당, 1988)
- 『서울특별시사』고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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