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덕수궁 함녕전은 1897년(광무 1)에 고종이 머물렀던 침전으로 세워졌으며, 1904년(광무 8)에 화재로 불에 타서 그해 다시 지은 건물로, 순종에게 선위를 물려준 고종이 1919년 1월 22일 승하하신 곳이다.
함녕전은 고종이 침전으로 사용하던 공간으로, 1897년(광무 1)에 건축되어 1904년(광무 8)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해 12월에 중건되었다. 1919년 1월 22일 고종은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며, 평면은 ㄱ자형으로 되어 있다. 그 중심이 되는 방의 평면은 경복궁의 강녕전(康寧殿)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이 좌우에 온돌방과 또 그 옆으로 누마루를 두었고, 이들 전면과 후면에는 툇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이러한 평면의 모양은 궁궐의 정침(正寢)이 가지는 공통된 것이다.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를 한 높은 기단 위에 네모뿔대로 다듬은 초석을 놓고, 귀접이와 쌍사밀이를 한 방주(方柱)를 세웠다. 기둥 윗몸은 모를 둥글게 죽인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고, 기둥 위에는 운두가 낮은 주두(柱枓)를 놓고, 기둥 윗몸으로부터 초각(草刻)된 부재를 놓아 끝머리가 초각된 보머리[樑頭]를 받치게 한 몰익공식의 건축이다.
보머리 안쪽 보 밑은 초각된 보아지로 받치고 있다. 단면이 둥근 굴도리 밑에는 장여를 놓고, 이 장여를 창방 위에 놓은 소로[小累]들이 받치고 있다.
가구(架構)는 내진(內陳)에서는 고주(高柱)와 앞뒤 평주(平柱) 사이에 퇴보[退樑]를 걸고 고주 사이에는 대들보를 건 뒤,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있는데, 종보 밑에는 우물천장을 하여 천장 속을 가리고 있다.
사면 모든 칸에는 벽체를 치지 않고, 우물 정(井) 자살창과 교창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지붕의 각 마루는 양성을 하고,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으로 장식하였다.
이 전각의 온돌방에 딸린 굴뚝[煙堗]은 전각 뒤편 석단(石段)을 쌓은 곳에 검은 벽돌로 쌓고, 상부는 기와지붕을 하고 연가(煙家: 굴뚝 위에 얹은 지붕모양의 물건)를 얹어, 연가의 창구멍으로 연기를 뿜게 되어 있다.
조선 후기 마지막 왕실 침전 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