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중의 하나.
개설
내용
도원도라는 역도 명칭이 『고려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도원역의 역명에서 유래하였던 만큼, 도원역은 이 역도가 관할하는 21개의 역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역이다. 도원도와 같이 각 역도의 첫머리에 기재된 대표 역의 명칭으로 역도 명칭을 삼은 경우는 궁예(弓裔)가 철원·송악을 중심에 두고 확보한 후고구려 영역 내에 분포하면서, 역도의 대부분 역이 고려 초기의 또 다른 역제(驛制)인 ‘6과체제’에서 확인되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 역도가 분포하는 영역은 교통 중심지대인 개경을 중심으로 ‘X’자형의 간선 교통로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도원도의 주요 진출 루트는 개경의 동북쪽 방면의 동주-교주를 경유하여 철령(鐵嶺)까지였다.
교주의 북쪽 요해처(要害處)인 철령은 행정구역인 교주도(交州道)와 동계(東界)의 경계선이면서, 역도인 도원도와 삭방도(朔方道)의 분기점이기도 하였다. 개경에서는 도원도와 삭방도를 통해 동계의 주요 군사거점인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등주(登州, 함경남도 안변군) 관내에 이를 수 있었다.
철령 전후(前後)의 산지 교통 경로는 도원도를 따라 교주에 이른 다음, 도원도 은계역-철령-삭방도 고산역(孤山驛, 등주 위산현) 순으로 하여 등주로 향하였다. 그리고 도원도는 동주 관내에서 개경도호부로 진입하는 지점을 가로 지르는 동강(東江)으로 불리는 임진강을 도하하였다. 즉, 도원도의 옥계역을 지나 임진강의 징파도(澄波渡)를 건너 백령역-도원역을 통해 개경으로 진입하였다. 특히 도원역은 장단도(長湍渡)에서 남쪽의 임진강을 건너 청교도(靑郊道)의 단조역(丹棗驛, 적성현)을 통해 남경(南京)으로 연결되는 개경의 동·남쪽 교통 분기 지점이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고려시대 교통운수사 연구』(한정훈, 혜안, 2013)
- 『『고려사』 병지 역주』(이기백·김용선, 일조각, 2011)
- 『국역 고려사』18(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경인문화사, 2011)
- 「고려·조선초의 역로망과 역제 연구」(정요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7∼11세기 경기도 북부지역에서의 간선교통로 변천과 ‘장단도로’」(정요근, 『한국사연구』1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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