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경주(慶州) 관내의 역을 아우르면서 동해안의 예주(禮州, 경상북도 영덕군) 방면으로 뻗은 역로망이다.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에, “경주도(慶州道)는 23개의 역을 관할하는데, 활리(活里)·모량(牟良)·아불(阿弗)·지리(知里)·노곡(奴谷)·잉사(仍巳)·구어차(仇於且)[경주], 장수(長守)[신녕(新寧,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淸通)·신역(新驛)·가화(加火)[영주(永州, 경상북도 영천시)], 범어(凡於)[수성(壽城, 대구광역시 수성구)], 압량(押梁)[장산(章山, 경상북도 경산시)], 육질(六叱)[신광(神光, 경상북도 포항시)], 안강(安康)[안강(경상북도 경주시)], 송라(松蘿)[청하(淸河, 경상북도 포항시)], 인비(仁比)[기계(杞溪, 경상북도 포항시)], 병곡(柄谷)·적용(赤冗)[예주], 아질달(阿叱達)[평해(平海, 경상북도 울진군)], 주현(酒垷)·남역(南驛)[영덕(盈德, 경상북도 영덕군)], 금전(琴田)[영양(英陽, 경상북도 영양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역도의 명칭이 고을 명칭인 경주에서 유래하는 만큼 경주 관내(管內)의 17개 역을 관할하면서 나머지 6곳의 역은 예주 관내에 분포한다. 활리역(活里驛)을 비롯하여 경주에 위치한 7개의 역에서 영천-경산-대구 방향과 포항-영덕-영해-평해로의 경로가 주요한 진출 방향이다. 경주의 활리역에서 시작하여 안강역-육질역-송라역-남역-주현역-병곡역을 경유하고 경주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아질달역(평해현)으로 이어지는 동해 연안의 역로는 양계(兩界) 중 하나인 동계(東界)의 울진현에 다수의 역이 분포하던 명주도(溟州道)로 연결되어 동해안 방어를 위한 군사도로의 성격도 지닌다.
또한 고려시대 경주도는 통일신라기 오통(五通: 동해통·해남통·염지통·북요통·북해통)·오문역(五門驛: 곤문역·태문역·건문역·감문역·간문역)을 통해 확인되는 왕경 중심의 다섯 방면으로 뻗은 간선교통체계를 근간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경주 치소(治所)에 가까이 위치한 활리역은 중심 역 시설로, 그 명칭이 신라로부터 고려시대 경주도로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와 같이 경주도는 신라 왕경 중심의 육상교통로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주변 지역으로의 역로망도 발달하였다.
동해 연안지역은 앞서 언급한 명주도와, 서북로는 경주도의 장수역(신녕)이나 범어역(수성)을 통과하여 낙동강변의 경산부도(京山府道)와 각각 만났다. 또한 서쪽과 남쪽 방면은 울산·김해·밀양 등지를 아우르며 낙동강 하류를 건너는 금주도(金州道)로 연결되어 서쪽 방면으로의 진출로로 활용되었다.
경주도는 고려시대 지방에 소재한 역도 중의 하나이지만, 통일신라시기 왕경 중심의 육상교통망이 시작되는 관도(官道)의 중심 구역이었다. 그런 만큼 경주와 인근 지역으로의 교통망을 복원하는 자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최근 경주와 낙동강유역을 중심으로 발굴된 도로 유구를 비롯한 고고학적 성과까지 함께 고찰한다면 고·중세시기 육상교통로의 실체 구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