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에 있는 신라 말 고려 초의 불상군.
내용
머리 부분을 새기다 그만둔 흔적을 보이는 상을 제외하면 현재 남아 있는 불상은 모두 29구이다. 이 가운데 2구는 대좌와 결가부좌한 다리만 남았으며 1구는 대좌만이 남아 있다.
불상은 4개의 층으로 나뉘어 아래로부터 15구, 그 위에 9구가 배치되었다. 3층에 2구, 4층에 1구, 3층과 4층 사이에 2구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불상의 크기는 대체로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큰 상을 먼저 새기고 남은 공간에 점차 작은 크기의 상을 새겨 나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상의 왼편이나 오른편에는 2자에서 4자 정도로 이루어진 명문을 동반한 상이 많다. ‘菩薩札白(보살찰백)’이라든가 ‘菩薩’이나 ‘先生’ 등의 글자를 판독할 수 있다.
불상은 모두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이다. 마모가 심해 분명히 알아볼 수 없으나 머리는 소발(素髮 : 민머리)과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 섞여 있다. 총탄 자국으로 보이는 마모 흔적 때문에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알아보기 어렵다.
양어깨에는 V자형의 목깃을 이루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좌우 어깨에서 내려오는 세로의 옷주름 선을 음각하였다. 3구 정도는 완만한 U형의 주름이 배 앞에 늘어지도록 표현된 경우도 있다.
수인(手印)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선정인(禪定印 :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앞에 모은 손 모양)을 한 손 위에 약함을 받쳐든 상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선정인의 수인을 맺고 있으며, 손의 위치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경우보다 대체로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있다.
2층에 배치된 상 가운데는 왼손으로 보주(寶珠)를 받들고 오른손으로 덮듯이 감싸 쥐고 있는 상이 2구 있다. 4층에 표현된 1구는 선정인에서 오른손을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이 상들은 각기 크기는 다르지만 법의는 모두 4줄의 완만한 U형 주름으로 표현되었다. 원형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은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한 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윤곽선 안을 파내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불신(佛身)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좌는 대체로 단판단엽의 연화대좌이나 앙 · 복련(仰 · 伏蓮)을 갖춘 대좌도 있다.
불신은 돋을새김하고 옷주름을 선각하였는데 크기가 작은 탓인지 세부를 섬세하게 조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정 근엄한 인상에 평행한 띠 형식의 옷주름 표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조성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불상군의 특이한 배치나 형식, 수인 등의 구성과 관련하여 보다 깊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조성 당시 이 지역에서 유행했던 불교 신앙의 한 측면이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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