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2년에, 진학문이 민족적 자조의 일치를 위하여 창간한 시사 잡지.
서지적 사항
내용
이 책은 “조선민족아 일치(一致)합시다. 민족적 자조(民族的自助)에 일치합시다.”라는 구호를 편집목표로 내걸었다. 편집위원으로는 염상섭(廉想涉)·권상로(權相老)·이유근(李有根)·현진건(玄鎭健) 등이 활약하였다.
창간호는 2만 부를 발행하여 충분히 소화시켰는데, 권두논문으로 <조선민시론 朝鮮民是論>을 비롯하여 권덕규(權悳奎)의 <조선어문의 연원과 그 성립>, 설태희(薛泰熙)의 <조선은 오직 조선인의 조선>, 최린(崔麟)의 <공생활과 사생활>, 최남선의 <조선역사 통속잡화> 등의 서명 기고를 실었다.
특히, <조선민시론>은 이음글로서 창간호부터 연재되어 2·3·4·7·9·10·11·12·13호 등에 걸쳐 한국민족의 대동일치를 호소, 강조하였다. 제1회 논설에는 김동성(金東成)의 시사만화까지 게재하였다.
이 책은 호를 거듭할수록 최남선의 개인적인 명망과 다채로운 편집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또, 처음부터 <신문지법 新聞紙法>에 의한 허가를 얻어내었기 때문에 일간신문과는 달리 각종 당면한 시사문제를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논평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 니가타현(新潟縣)에서 일어난 한국인 노무자의 학살사건의 상세한 보도라든가, <인민을 위한 경관인가 경관을 위한 인민인가>라는 제목의 폭로기사, ‘동명평단’과 같은 단평란 등이 그것이다. 문예작품도 게재하여 양백화(梁白華)의 <빨래하는 처녀>, 염상섭의 <E선생> 등 연재소설을 실었고, 여성을 위한 가정개량에 관한 글도 실었다.
또, 애란(愛蘭) 민족운동이라든가 토마스 커컵의 <사회주의 요령> 등도 소개하였다. 그 뒤 1923년 6월 3일, 시대에 좀더 대응하고자 한다는 사고(社告)를 내고 일간신문으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제3권 23호(통권 40호)를 마지막으로 발전적인 해체를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0)
- 『한국신문사연구』(이해창, 성문각, 1971)
- 『한국언론연표 1881∼1945』(계훈모 편,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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