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복의 후손 김현진(金顯眞)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순익(李淳翼)의 서문과 권말에 이기종(李起鍾)의 발문이 있다.
7권 2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시 331수, 권2에는 ‘정련록(鼎聯錄)’이라 하여 박태순(朴泰淳)·이현(李礥)의 시 56수, 권3에 제문 8편, 축문 11편, 교서·비답(批答)·상량문 각 1편, 조(詔)·잡저 각 4편, 잠 2편, 명 3편, 송(頌) 2편, 권4에 소 32편, 계문(啓文) 16편, 시사(時事) 1편, 권5에 묘표 3편, 묘지 8편, 묘지명·광지(壙誌) 각 1편, 광지명 2편, 권6에 연행일기(燕行日記), 권7에 부록으로 세계·생변(生邊)·사록(事錄)·교서·사제문·제문·만사·비지(碑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최석정(崔錫鼎)·이숙(李塾)·이의창(李宜昌)·남구만(南九萬)·이굉(李宏) 등이 중국에 사행을 떠날 때 전송한 시가 많다. 그리고 과제시(課題詩)인 「화악루(花萼樓)」·「동작대(銅雀臺)」를 비롯하여 윤덕준(尹德駿)·유득일(兪得一)·홍가상(洪可相) 등과의 화답시, 이현조(李玄祚)·유성룡(柳成龍)·홍계한(洪啓漢) 등의 시에 대한 차운시(次韻詩)들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권2의 ‘정련록’에도 「수마(睡魔)」·「차창려남산시(次昌黎南山詩)」·「춘야연구(春夜聯句)」·「기방중소견잡물(記房中所見雜物)」·「이십팔수체(二十八宿體)」·「육부체(六府體)」·「의한맹성남연구(擬韓孟城南聯句)」·「건제체(建除體)」 등 다양한 시가 실려 있다.
권3에는 김해김씨시조릉(金海金氏始祖陵)·왕비릉(王妃陵) 등을 대상으로 지은 제문과 헌릉(獻陵)·익릉(翼陵)·장릉(章陵)·숭릉(崇陵) 등의 개축과 교하(交河)·평산(平山)·이천(伊川) 등의 향교를 수리한 내력을 기록한 축문이 있다. 또한 대작(代作)으로 된 「부체찰사김석주교서(副體察使金錫胄敎書)」와 「영의정유상운삼도정사불윤비답(領議政柳尙運三度呈辭不允批答)」 등이 실려 있어 좋은 자료가 된다.
조(詔)의 「당종천하사수조(唐縱天下死囚詔)」·「송치의창조(宋置義倉詔)」·「한명도화공신기린각조(漢命圖畵功臣麒麟閣詔)」 등과 잡저의 「한부배위상운중수제(漢復拜魏尙雲中守制)」·「한부배제갈량승상제(漢復拜諸葛亮丞相制)」, 잠의 「무경민사잠(無經民事箴)」, 명의 「목농부명(木農夫銘)」, 송의 「비복즉전공송(卑服卽田功頌)」·「해불양파송(海不揚波頌)」 등과 「대절식어공리판(對窃食御供梨判)」 등은 역사적 사실 및 현실적 문제에 접근하여 폭넓은 주제와 다양한 논지를 전개한 것이다.
소에는 검열(檢閱)·대교(待敎)·정언(正言)·지평(持平)·황해감사·예조참의·승지 등에 대한 수많은 사직소가 있고, 당시의 현실 문제를 간간이 언급한 글을 비롯해 「청소강첨사정후량파직계(請所江僉使鄭后亮罷職啓)」·「청금평군곽삭탈관작지명환수계(請金坪君漷削奪官爵之命還收啓)」·「청경양찰방임대년태거계(請景陽察訪任大年汰去啓)」 등을 포함한 당시 당쟁에 얽힌 관리들의 출척(黜陟)에 관계된 다수의 글이 실려 있다. 그리고 1685년(숙종 11) 그가 『갑을록(甲乙錄)』에서 채록한 「한원간통(翰苑簡通)」과 그 외 「재한원시사(在翰苑時事)」 등은 당시의 치열한 당쟁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권6의 「연행일기」는 그가 1688년 10월에 사신의 일행으로 중국에 갔다가 이듬해 정월에 돌아올 때까지 겪은 일과 감상을 적은 것으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밖에 부록에는 그의 가계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세계」·「생변」 등과 왕의 교서를 비롯해 이덕성(李德成)·윤증(尹拯)·박세당(朴世堂)·최석정 등이 그에 대하여 서술한 글이 있고, 그의 부인인 신씨(申氏)의 「사록(事錄)」과 「세계」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