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권 19책. 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1682년(숙종 8)에 편집되었고, 후에 박세채의 문인인 이세환(李世瑍)이 보편(補編)하였으며, 우리나라의 명현을 수록한 책이라 하여 『명현록』이라고도 불린다. 박세채가 기술한 부분(사실상의 원본)만 수록한 『동유사우록』도 있으나, 그것은 이세환이 보편한 것과 차이가 없고, 오히려 후집(後集)과 보유(補遺)가 부가된 이 책의 내용이 더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박세채가 우리나라 도학사우(道學師友)의 연원이 인멸되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이 책을 엮게 되었다고 발문에서 강조했듯이, 이 책은 도학사(道學史)의 자료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보편자인 이세환은 박세채가 미처 다루지 못해 유감으로 생각하였던 이약동(李約東)·신상(申鏛)의 항목을 완성하고, 또 자기 나름대로 그밖의 제현들을 보충하였다.
이 책은 신라 설총(薛聰)에서 조선의 성혼(成渾)과 그 문인들에 이르기까지 유학자들의 학문이 어떻게 전수되고 교류되어 왔는가를 설명한 책으로서 한국 유학, 특히 도학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조명이 그 주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 가운데 성리학 이전의 유학자인 강수(强首)·김부식(金富軾)이 제외되었고 신숙주(申叔舟)·양성지(梁誠之)·이순신(李舜臣)·곽재우(郭再祐) 등 일반 유학자들이 빠진 것으로 보아 한국 유학사 가운데서도 성리학사 부류의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물의 취사선택과 선정된 인물의 호칭이 다른 것은 춘추대의(春秋大義)의 가치관에 투철한 도학정신에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내용 서술상 특징의 하나는 학통을 표시함에 누구의 문인임을 명기해 학자의 계보와 당론의 대립까지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은 저자 자신이 주관적 저작의 형식을 철저히 피하고, 학자 개개인의 인물·학문·연원설명을 자료와 기록을 인용하며 그 출처를 밝혀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자료에 의존하는 이러한 저술경향은 그 기록자체의 책임성과 기술 내용의 객관성을 높이고, 당쟁을 비롯한 정치사적 자취와 시문계(詩文界)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유교문화의 다채로운 편린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