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집 ()

유교
문헌
1895년에, 간행한 조선 후기 문신 · 학자 정원용의 시문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조선후기
간행 시기
1895년
저자
정원용(鄭元容)
편자
정기세(鄭基世), 정범조(鄭範朝)
권책수
20권, 부록 3권 합11책
권수제
경산집(經山集)
판본
목활자본
표제
경산집(經山集)
소장처
연세대 도서관, 규장각 도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경산집』은 조선 후기 문신·학자인 정원용의 한시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정기세가 손수 편찬한 저자의 유고를 저자의 손자 정만조가 다시 20권으로 편차·교정하고, 부록으로 연보·행장·묘표·교서(敎書)·사제문(賜祭文)을 추가하여 1895년(고종 32)에 간행하였다. 원본 20권, 부록 3권, 합 23권 11책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에 있다.

정의
1895년에, 간행한 조선 후기 문신 · 학자 정원용의 시문집.
편찬 및 간행 경위

저자의 아들 정기세(鄭基世, 18141884)가 손수 편찬한 저자의 유고를, 저자의 손자 정범조(鄭範朝, 18331898)가 다시 20권으로 편차 · 교정하고, 부록으로 주1 · 행장 · 묘표 · 교서(敎書) · 사제문(賜祭文)을 추가하여 1895년(고종 32)에 간행하였다. 권말에 정범조는 발문을 통해 저자의 덕행과 과업을 드러내어 할아버지를 기리고, 저자의 유고를 간행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문집을 간행하게 되었다고 경위를 밝히고 있다.

구성과 내용

원본 20권, 부록 3권, 합 23권 11책. 아들 기세(基世)가 편집하다가 완성하지 못했고, 손자인 범조(範朝)가 1895년(고종 32)에 완성해 간행한 것이다. 권말에 범조의 발문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4에 부 4편, 시 281수, 권58은 주2 93편, 권9~11은 주(奏) 2편, 계 38편, 의(議) 9편, 장(狀) 6편, 문 21편, 상량문 5편, 권12 · 13은 서(書) 8편, 서(序) 16편, 제문 17편, 잡저 6편, 권14 · 15는 신도비명 15편, 권16 · 17은 묘갈명 10편, 묘표 5편, 봉지문(奉誌文) 10편, 권18∼20은 가장 3편, 시장(諡狀) 9편, 부록의 권1∼3은 연보 · 행장 · 묘표 · 묘지명 · 교서 · 주3 각 1편, 비답(批答) 2편, 사제문 4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4에는 「유선관부(留仙觀賦)」 등 부(賦) 4편, 「송파주중시(松坡舟中詩)」를 비롯한 시(詩) 281수가 있다. 「유선관부」는 저자가 사신으로서 머물던 객사의 하나인 유선관의 풍경을 읊은 부이다. 몸은 비록 관계에 있지만 세속을 떠나 자연을 벗 삼는 신선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어느 날 산행 중에 도관에 머물면서 자기의 소망을 잠시나마 이룬 기쁨을 나타낸 것이다. 시의 주제는 금강산 · 강화도 지역 등 저자가 벼슬을 역임하던 곳의 정세와 풍경을 읊은 것에서부터 사신으로 주5을 다녀오면서 중국인들과 화답한 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권5~8에는 「검열원관규소(檢閱援館規疏)」 등 상소 93편이 수록되었다. 「검열원관규소」는 저자가 검열로 있을 때, 주4에 따라 검열직을 체직시켜 줄 것을 청하는 상소이다. 저자는 20세에 문과에 합격한 이후 72년간 관직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상소의 글이 많은데, 사직을 청하는 내용과 조정의 쟁점이 되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글이 대부분이다.

권9에는 「각신진면주(閣臣陳勉奏)」 등 주(奏) 2편, 「옥당진면계(玉堂陳勉啓)」 등 계문 38편이 수록되었다. 「각신진면주」는 저자가 주6으로 있을 때 왕에게 주7 위해 올린 3개의 주8이다. 「옥당진면계」는 저자가 주9의 관원으로 있을 때 왕에게 진면(陳勉)하기 위하여 올린 계(啓)이다. 여기서 저자는 옥당이 문과에 급제한 학자의 전당임을 밝히고, 학자가 비록 주10이 아니더라도 임금을 돕고 나라를 바르게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주11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 글은 대부분 신하로서 왕에게 권면하는 글들로 주제는 주로 건강에 유의할 것, 민생을 돌볼 것, 학문에 주력할 것, 언로를 열어 줄 것 등이다.

권10에는 「효현왕후졸곡후입제변통의(孝顯王后卒哭後笠制變通議)」 등 의(議) 9편과 「위유호서청재민견휼장(慰諭湖西請災民蠲恤狀)」 등 장(狀) 6편이 수록되었다. 의는 종묘의 축식(祝式) · 상례(喪禮)의 구체적 절차, 선왕이 묘호 문제 등 모두 예제(禮制)와 관련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장은 저자가 주12 · 관찰사(觀察使) 등 지방관으로 부임했을 때, 지역의 폐단을 보고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내용이다.

권11은 응제문(應製文)으로, 「효현와우시호옥책문(孝顯王后謚號玉冊文)」 등 주13 12편, 주14 1편, 주15 3편, 사보감세선온전문(謝寶鑑洗宣醞箋文) 3편, 「강녕전상량문(康寧殿上樑文)」 등 상량문 5편을 수록했다. 옥책문이나 악장문은 선왕이나 왕비를 추모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전문(箋文)은 저자의 회혼일과 문과회방목(文科回榜日)에 내려진 주16에 대하여 사은하는 내용이다. 상량문은 주17 · 오순정(五詢亭) · 화수정(花樹亭) · 학포당(學圃堂) · 산하출천재(山下出泉齋)의 상량식(上梁式)에서 사용된 것들이다.

권12에는 「상죽석서상서서(上竹石徐尙書書)」 등 서(書) 8편, 「보감총서(寶鑑總序)」 등 주18 16편, 「수락도봉산유기(水落道峯山遊記)」 등 기(記) 6편, 「문원보불속편발(文苑黼黻續編跋)」 등 주19 6편이 수록되었다. 편지글은 서영보(徐榮輔) · 이상황(李相璜) · 홍경모(洪敬謨) · 박종훈(朴宗薰) · 홍석주(洪奭周) · 김좌근(金左根) 등 당대 재상들과 주고받은 것이 많은데, 신변잡기적인 것과 당대 관료들인 만큼 정책 자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서와 발은 저자가 지은 책에서부터 당대 지인이 지은 문집에 대한 서문을 다루고 있고, 기는 유람한 곳의 경로와 소감을 적고 있다.

권13에는 제문(祭文) 17편, 잡저(雜著)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은 순조(純祖)부터 서헌보(徐憲輔) · 이존수(李存秀) 등 당대 저명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잡저로는 책제(策題) 2편과 남공철(南公轍)주20에 대한 찬(贊), 벼루와 칼에 대한 명(銘) 각 1편, 주21)와 바둑에 대한 설(說) 등이 수록되었다. 「인명(刃銘)」에서는 칼의 날카로움은 쓰는 사람이 올바르게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했고, 「기설(棊說)」에서는 바둑은 인간의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패가망신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권14~15에는 신도비(神道碑) 15편, 권16은 묘갈(墓碣) 10편, 묘표(墓表) 5편, 권17은 지명(誌銘) 10편, 권18은 가장(家狀) 3편, 행장(行狀) 2편이 수록되었다.

권19~20에는 시장(諡狀) 9편이 수록되었는데, 저자의 친인척과 국왕에서 재상까지 다양한 인물의 일대기를 수록하였다. 부록은 저자의 행적에 관한 것으로 권1은 저자의 연보(年譜), 권2는 파평(坡平) 윤자덕(尹滋悳)이 편찬한 저자의 행장, 권3은 정기세(鄭基世)가 쓴 저자의 묘표(墓表), 정범조(鄭範朝)가 쓴 묘지(墓誌), 저자가 받은 교서(敎書) 2편, 저자의 상소에 대한 왕의 비답(批答) 2편, 왕이 내려준 사제문(賜祭文) 4편을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경산집(經山集)』

논문

권은지, 「經山 鄭元容 文學 硏究」(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1)
허경진, 「연세대학교 소장 고서의 문헌적 가치-13종 저술을 통해본 관인 정원용의 기록태도」(『동방학지』 146,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9)

기타자료

규장각 도서 해제(https://kyudb.snu.ac.kr/book/view.do?book_cd=GK01756_00&notes=moonzip)
주석
주1

사람이 한평생 동안 지낸 일을 연월순(年月順)으로 간략하게 적은 기록. 흔히 개인의 연대기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2

상소(上疏)와 차자(箚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임금이 손수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주4

관리에게 적용하는 규칙. 우리말샘

주5

중국 베이징(北京)의 옛 이름. 옛날 연나라의 도읍이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우리말샘

주6

조선 후기에 둔 규장각의 벼슬아치. 우리말샘

주7

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하다. 우리말샘

주8

임금에게 아뢰는 글. 우리말샘

주9

화려한 전당이나 궁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0

조선 시대에, 사간원과 사헌부에 속하여 임금의 잘못을 간(諫)하고 백관(百官)의 비행을 규탄하던 벼슬아치. 우리말샘

주11

조정이나 윗사람에게 사정이나 의견을 아룀. 우리말샘

주12

지방에 천재지변이 있을 때, 백성을 위로하기 위하여 어명으로 보내던 임시 벼슬. 우리말샘

주13

옥책에 새긴 송덕문. 우리말샘

주14

제왕이나 왕비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글. 우리말샘

주15

조선 초기에 발생한 시가 형태의 하나. 나라의 제전(祭典)이나 연례(宴禮)와 같은 공식 행사 때 궁중 음악에 맞추어 불렀으며, 주로 조선 왕조의 개국과 번영을 송축하였다. <용비어천가>, <문덕곡#GT#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우리말샘

주16

임금이 신하에게 궁중의 사온서에서 빚은 술을 내리던 일. 또는 그 술. 우리말샘

주17

경복궁 안에 있던 왕의 침전(寢殿). 임진왜란 때에 타 버린 것을 26대 고종 초년에 재건하였는데, 뒤에 창덕궁으로 옮겼으며 현재의 건물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우리말샘

주18

책이나 논문 따위의 첫머리에 내용이나 목적 따위를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주19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주20

사람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린 형상. 우리말샘

주21

온몸의 털빛이 검푸른 말.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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