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영의정, 호조판서,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95년 대사간을 역임하고, 1804년(순조 4)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우윤 · 개성유수가 되었다. 1810년 전라도관찰사가 되고, 1812년 한성부판윤 ·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 해 사은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호조판서가 되었다. 1816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가 홍경래(洪景來)의 난 이후 마비된 장중위(壯中衛)를 폐지하고, 별친기위(別親騎衛)를 설치하였다.
1820년 이조판서를 거쳐 홍문관제학 · 평시서제조(平市署提調) 등을 지냈으며, 1824년 좌의정이 되어, 1828년 재용 절약이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임을 강조하였다. 1829년 심양문안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30년 세손사부(世孫師傅)를 겸하였다. 이 해 주청정사(奏請正使: 주청사(奏請使)의 우두머리)로 부사 이지연(李志淵), 서장관 윤심규(尹心圭)와 함께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1년 서울과 지방의 무뢰배가 궁방과 아문을 빙자해 쌀 · 소금 등의 매매를 침탈하는 것을 금하도록 주장하였다. 1833년 영의정에 올라, 수령은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이므로 선택을 신중히 할 것을 청하였다.
1835년(헌종 1) 실록총재관에 임명되어 『순조실록』 편찬을 주재하였다. 1838년 영의정을 사직하였으나, 이듬해 다시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성품은 검소하였으며, 업무 처리는 정성을 다해 주도면밀하게 말없이 실시하였다고 한다. 헌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저서로는 『동어집』 · 『해영일기(海營日記)』가 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헌종실록(憲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경산집(經山集)』
- 『관서신미록(關西辛未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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