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청나라 왕이 자기 선조의 분묘가 있던 성경(盛京), 즉 봉천(奉天)에 행행(行幸)하였을 때 이곳은 조선과 가까운 곳이므로 기거문안을 하기 위하여 행재소로 보냈다.
선위사(宣慰使)라고도 불렀던 이 사행은 정례사행이 아닌 임시사행으로, 정사(正使)를 정1품관으로 하는 일품행(一品行)으로 서장관(書狀官)만 두고 부사가 없는 단사(單使)였는데, 왕·왕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성절사를 겸할 때는 부사를 두었다. 청나라 때는 주로 동지사로 통일되었다.
가지고 간 문서로는 왕 앞으로 기거표(起居表)·방물표(方物表)·예부자(禮部咨)·예물총단(禮物摠單) 등이 있었으며, 왕대비·왕비가 함께 성경에 이르면 각각 장(狀)·예부자가 있었다.
예물은 황제에게는 여러 빛깔의 모시와 명주·화석(花席) 및 백면지(白綿紙)였으며, 황후에게는 나전소함(螺鈿梳函) 1건, 여러 빛깔의 모시와 명주 및 화석이었으며, 황태후에게는 황후와 같은 종류, 황태자에게는 여러 빛깔의 모시와 명주·화석·백면지 등을 보냈는데, 이것은 정조사 때와 같고, 성절사 때만은 황제에게 수달피 20장이 특별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