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한 무덤의 옆에 딸린 조그마한 종속적 무덤. 배장·배분.
내용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주무덤과 딸린무덤의 구별이 곤란한 경우가 많이 있다. 딸린무덤은 섬기던 주인이나 상급자의 무덤, 즉 주무덤의 곁에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고구려에서는 집안 장군총(將軍塚) 딸린무덤을 들 수 있다. 장군총의 모퉁이에는 왕의 첩이나 호위 장수들의 묘로 추정되는 딸린무덤이 다섯 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동북쪽 모서리에 고인돌 모양으로 한 기가 남아 있다. 천정으로 사용한 넓은 석판의 안쪽 가장가리를 삥 둘러 홈을 파놓은 것이 눈에 띤다. 이는 결로(結露) 현상을 막기 위한 고구려인의 지혜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라에서는 경주 무열왕릉과 그 앞에 있는 2기의 작은 고분, 즉 전김양 묘(傳金陽墓)와 전김인문 묘(傳金仁問墓)가 좋은 예이며, 경주 미추왕릉의 주변에서 발굴된 수십기의 소형 고분들도 딸린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에서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1968년에 1호분과 2호분 사이에서 발견된 소형의 석실도 일종의 딸린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야에서는 고성 송학동 고분군이 유명하다. 여기에서 1호분인 무기산고분(舞妓山古墳)은 중앙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규모가 가장 큰 전방후원분인 데 비해, 2호를 비롯한 3∼7호분은 주변 낮은 곳에 죽 둘러져 있어 주무덤과 딸린무덤의 가장 좋은 예가 된다. 그러므로 주무덤은 규모가 크고, 딸린무덤은 규모가 작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참고문헌
- 『소가야의 고고학적 연구』 (하승철, 경상대학교박사논문, 2015)
-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 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 『가야무덤』1.2(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07)
- 『집안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성균관대박물관 편, 2006)
- 『무기산(舞妓山)과 장고산(長鼓山)』(강인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 『한국(韓國)의 고분(古墳)』(김원룡,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 「집안 지역(集安 地域) 고구려 왕릉(高句麗 王陵)에 관한 신고찰(新考察)」(이도학, 『고구려발해연구』제30집, 2008)
- 「중국 길림성 집안 지역 고구려 왕릉의 구조에 대하여」(강현숙,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제41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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