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린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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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경주 서악동 고분군 동쪽 전경
경주 서악동 고분군 동쪽 전경
고대사
개념
한 무덤의 옆에 딸린 조그마한 종속적 무덤. 배장 · 배분.
이칭
이칭
배장(陪葬), 배분(陪墳)
목차
정의
한 무덤의 옆에 딸린 조그마한 종속적 무덤. 배장 · 배분.
내용

‘배장(陪葬)’ 또는 ‘배분(陪墳)’·‘배총(陪塚)’이라고도 한다. 딸린무덤이라는 말은 주(主)무덤에 대한 말로서 한 곳에 2기 이상의 고분이 있고, 그 중 하나는 위치나 규모가 뛰어나게 다른 경우에 흔히 쓰는 용어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주무덤과 딸린무덤의 구별이 곤란한 경우가 많이 있다. 딸린무덤은 섬기던 주인이나 상급자의 무덤, 즉 주무덤의 곁에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고구려에서는 집안 장군총(將軍塚) 딸린무덤을 들 수 있다. 장군총의 모퉁이에는 왕의 첩이나 호위 장수들의 묘로 추정되는 딸린무덤이 다섯 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동북쪽 모서리에 고인돌 모양으로 한 기가 남아 있다. 천정으로 사용한 넓은 석판의 안쪽 가장가리를 삥 둘러 홈을 파놓은 것이 눈에 띤다. 이는 결로(結露) 현상을 막기 위한 고구려인의 지혜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라에서는 무열왕릉과 그 앞에 있는 2기의 작은 고분, 즉 전김양묘(傳金陽墓)와 전김인문묘(傳金仁問墓)가 좋은 예이며, 미추왕릉의 주변에서 발굴된 수십기의 소형 고분들도 딸린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에서는 부여 능산리고분군에서 1968년에 1호분과 2호분 사이에서 발견된 소형의 석실도 일종의 딸린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야에서는 고성 송학동고분군이 유명하다. 여기에서 1호분인 무기산고분(舞妓山古墳)은 중앙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규모가 가장 큰 전방후원분인 데 비해, 2호를 비롯한 3∼7호분은 주변 낮은 곳에 죽 둘러져 있어 주무덤과 딸린무덤의 가장 좋은 예가 된다. 그러므로 주무덤은 규모가 크고, 딸린무덤은 규모가 작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참고문헌

『소가야의 고고학적 연구』 (하승철, 경상대학교박사논문, 2015)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 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가야무덤』1.2(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07)
『집안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성균관대박물관 편, 2006)
『무기산(舞妓山)과 장고산(長鼓山)』(강인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한국(韓國)의 고분(古墳)』(김원룡,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집안 지역(集安 地域) 고구려 왕릉(高句麗 王陵)에 관한 신고찰(新考察)」(이도학, 『고구려발해연구』제30집, 2008)
「중국 길림성 집안 지역 고구려 왕릉의 구조에 대하여」(강현숙,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제41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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