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장수 김인문의 무덤. 원형봉토분.
개설
내용
종래에는 태종무열왕릉(경주 무열왕릉) 앞에 있는 두 개의 무덤을 두고 김인문묘와 김양(金陽)의 묘로 서로 혼동하여 그 주장이 달랐다. 그런데 『삼국사기』 열전 김양전과 김인문전에 각각 기록된 것처럼 김양묘는 태종무열왕릉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은 딸린무덤〔陪葬〕형식으로 배치된 것이며, 김인문묘는 그보다 좀더 남쪽에 있으면서 약간 봉분이 크고 왼쪽에 묘비의 귀부가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묘비의 절반 이상은 결손되고 마멸이 심해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 다만, 비면에 남아 있는 조문흥대왕(祖文興大王) · 태종대왕탄미기공(太宗大王歎美其功) · 공위부대총관(公爲副大摠管) 등의 글귀로 미루어보아 김인문묘비로 추정된다. 건립연대는 현존 비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전에는 효소왕이 695년(효소왕 4) 10월 27일에 김인문을 태대각간(太大角干)으로 추증하고 경주의 서쪽 들판에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는 내용이 전하고 있어서 이 때 김인문의 무덤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동경잡기(東京雜記)』
- 『신라 금석문의 현황과 과제』(경주시 신라문화선양회·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신라문화제학술논문집』23, 2002)
- 『고분연구』(강인구, 학연문화사, 2000)
- 「近時發見の新羅金石文」(末松保和,『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1954)
- 「新羅金仁問墓碑の發見」(藤田亮策,『靑丘學叢』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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