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육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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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시에 있었던 국립교육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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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마산시에 있었던 국립교육대학.
연원 및 변천

1969년 2월 문교부 공고 제1121호에 의거 1969년 3월 226명(정원 250명 중)의 제1학년 입학식을 기행함으로써 정식으로 출범되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념 아래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고 건전한 사상을 구유케 하여 지도적인 인격과 기능을 가진 유능한 국민학교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9년 6월 제212학도군사훈련단(RNTC)이 창단되어 남학생으로 2년간 소정의 군사훈련을 이수한 자는 졸업과 동시에 예비역하사관으로 임관되었다. 1969년 8월 임시초등교원양성소가 개설되고 같은 해 11월 준교사반 제1기생의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한 이래 모두 6기(준교사반 4기, 2급 정교사반 2기)에 걸쳐 619명(준교사 451, 2급정교사 168)의 수료자가 배출되었다.

1970년 4월 부설 초등교원연수원의 설치가 인가되고, 동년 6월 행정반(교감반) 50명이 입원, 연수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마산교육대학부설 초등교원연수원은 경상남도의 마산시·충무시·진해시·울산시·밀양군·통영군·양산군·울주군·동래군·김해군·창원군·거제군·고성군 소재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초등교원의 연수를 담당하였다. 초등교원연수원은 행정반(교감반)과 정규반(2급 정교사반, 1급 정교사반)을 운영하여 모두 1,764명의 수료자를 배출하였다.

부속기관으로 도서관·기숙사·학생지도연구소 등이 있었다. 학생지도연구소는 학생들의 학내외 생활을 과학적이고 조직적으로 지도하여 건실한 교육자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전체교양지도, 집단지도, 개인지도 등의 방법으로 학생지도를 실시하였다.

1973년과 1974년의 여름방학 기간에 2기에 걸쳐 주부시민대학을 개설하여 315명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각각 3주간에 걸쳐 주5일간 매일 4시간씩의 수업을 실시하고 산업시설과 견학과 특강도 실시하였다.

주부시민대학은 도시새마을운동과 보다 적극적인 부녀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주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교양과 생활양식 및 기술습득 등으로 도시새마을운동의 향도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1972년에 선조들의 유물을 수집 보존하여 후학들에게 계승시키며, 그들의 생활상과 정신을 탐구하여 내일의 바탕으로 삼을 것을 목적으로 한 향토자료실이 설치되었는 바 자료가 많이 수집됨에 따라 1974년 3월에 향토관으로 발전되었다. 향토관은 700여점의 유물을 보유하였다.

이밖에도 『마산교육대학보』(1969.7.9.창간호 발간), 『마산교육대학논문집』(1970.8.15. 제1집 발간), 『갈마』(교지, 1972.2.10.창간호 발간) 등을 간행하였다.

1970년대 이르러 초등교원의 과잉 배출을 방지하기 위한 문교부의 5개 교육대학의 폐지 방침에 따라 1977학년도에 신입생 모집이 중지되고, 1978년 2월 말 로 폐지되어, 1978년 3월마산초급대학(후에 창원대학교로 개편)으로 개편되었다. 1971년도부터 1979년 2월 말까지 8회에 걸쳐 모두 1,700명(남 678, 여 1,022)의 졸업자를 배출하였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초등교원양성교육사』(김영우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창원대학교25년사』(창원대학교25년사편찬위원회, 창원대학교, 1995)
『교원교육』-한국초·중등교원교육사(김영우, 하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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