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06년에, 동학의 제3대 교주 손병희의 발의로 창간한 일간 신문.
개설
서지적 사항
내용
창간사에서 “신문이란 지식을 계발하는 하나의 교육기관일 뿐만 아니라 국제간의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고 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으며 정치를 지도할 수도 있을 만큼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이어서 신문사의 설립목적이 오로지 인민의 교육에 있음을 밝히고, 2천만 동포의 지식계발을 초미(焦眉)의 일로 여기고 온갖 정신을 교육 중심으로 할 것임을 다짐하였다. 이 신문은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를 강경한 논설로 계속 공격하였으며 반민족적인 행위 등을 단호히 규탄하였다.
1906년 7월 23일자에서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을 비난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14일자에서는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의 비행을 강력히 규탄하였다.
이 신문은 1906년 7월 22일자부터 10월 10일자까지 이인직의 <혈(血)의 누(淚)>라는 신소설을 우리 나라 신문사상 첫번째로 50회에 걸쳐 연재하는가 하면, 이어 10월 14일부터는 <귀(鬼)의 성(聲)>을 연재하는 등 다채로운 지면구성을 시도하였다.
고종황제도 이 신문을 애독하여 내탕금(內帑金:임금이 사사로이 쓰는 돈)에서 1,000원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천도교측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여 창간 1년이 지난 1907년 6월 29일 제293호로 종간호를 내었다.
이 달 30일에 “기계파손으로 정간하며 다시 발간될 시기를 알기 어렵다.”는 전단광고(傳單廣告)를 낸 뒤 속간되지 못하였다. 그 뒤 이인직이 시설 일체를 매수하여 1907년 7월 18일부터 ≪대한신문 大韓新聞≫으로 제호를 바꾸어 간행되었다. →대한신문
참고문헌
-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8)
- 『한국신문사연구』(이해창, 성문각, 1975)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 『한국언론사연구』(정진석, 일조각,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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