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군 ()

의생활
물품
조선시대, 상류층 여성이나 남성이 말을 탈 때 겉옷 위에 착용한 바지.
이칭
이칭
말군(袜裙), 말고(襪裙), 말고(袜裙), 말고(抹袴), 말고(袜袴), 말고(襪袴), 말고(末古)
물품
재질
견, 면
용도
복식
소장처
인천시립박물관|안동대학교박물관
제작 시기
조선시대
관련 의례
혼례
내용 요약

말군(襪裙)은 조선시대 상류층 여성이나 남성이 말을 탈 때 겉옷 위에 착용한 바지이다. 바지폭이 넓고, 밑이 트여 있으며, 입으면 허리 말기가 겨드랑이에 이른다. 여성의 말군은 왕실 및 내 · 외명부 혼례 시의 기록에 있으며, 남성의 말군은 기록에는 없으나 풍속화에 말군 착용 모습이 확인된다. 착용 모습은 왕실 행사 장면을 묘사한 ‘반차도’, 조선 후기 풍속화 등에서 볼 수 있다. 실물 자료는 지금까지 조선 전기 여성의 묘에서 출토된 2점이 있다.

키워드
정의
조선시대, 상류층 여성이나 남성이 말을 탈 때 겉옷 위에 착용한 바지.
형태와 제작방식

말군(襪裙)의 형태는 배래가 짧고 바짓가랑이가 깊게 트여 있으며 허리 말기가 치마와 같이 일자로 되어 있어 앞에서 뒤로 입는 형태이다. 회화 자료를 통해 본 말군의 착용 모습은 허리 말기가 겨드랑이에 이르며, 가랑이 사이로 안에 입은 옷이 노출된 것을 볼 수 있다.

말군의 실물 자료는 지금까지 보고된 것이 2건으로 인천시립박물관과 안동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소재는 전자가 숙초(熟綃), 후자가 세주(細紬)로 모두 견직물이다. 두 건의 말군은 허리 주름의 차이가 있으나 완성 형태는 거의 같다.

인천 석남동 출토 말군의 제작 방식을 살펴보면 먼저 폭을 이은 가랑의 허리는 주름을 잡고, 하단은 배래 27cm와 부리 15cm를 만든 다음 나머지 여유분의 반을 접은 4겹을 일자로 박는다. 바짓가랑이는 앞 중심에서 13cm를 서로 겹쳐 허리에 연결한 다음 양 끝에 끈을 단다. 이렇게 완성된 인천 말군의 길이는 117cm, 가랑이 전체 폭 너비 235cm이다.

/그림은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아 삭제함. 이슈 보고 완료. [그림 1] 인천 석남동 출토 말군(앞), 15세기 추정 (인천시립박물관, 연구자 촬영) [그림 2] 인천 석남동 출토 말군, 도식화(앞) (연구자 그림) [그림 3] 인천 석남동 출토 말군, 도식화(뒤) (연구자 그림)/

변천 및 현황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1412년(태종 12) 사헌부의 상소문에 옛 풍습대로 존비(尊卑) 구분 없이 착용하는 복식에 대해 “궁녀와 상기 이외에 말군을 허락하지 말라.”라는 내용이 있다. 이로 볼 때, 말군이 오래전부터 입어 온 풍습이라는 점과 존비 구분 없이 입었던 바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뒤이어 1429년(세종 11)에도 “여종은 말군을 입지 못하게 하라.”라는 내용이 한 차례 더 거론된 것으로 볼 때, 낮은 계층의 말군 착용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1457년(세조 3) 기록에는 높은 신분의 부인이 말군을 입지 않고 말을 타자 기생으로 오인 받아 화를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후 말군은 왕비 및 왕세자빈, 숙의, 군부인, 왕녀와 이들을 수행하는 상궁 이하 기행 나인의 복식으로 확인되며, 기녀도 말군을 착용한 사례가 있다.

이 명칭은 말군(襪裙, 袜裙)과 말고(襪裙, 袜裙, 抹袴, 袜袴, 襪袴, 末古)로 기록되어 있으며, 구성은 겹말군(裌襪裙)과 홑말군[單袜裙]이 있다. 승마용 말군의 색은 모두 백색의 기록이 확인되는데, 『상방정례(尙方定例)』에 말군의 끈감[纓子]으로 초록광적(草綠廣的) 반폭 4척으로 기록된 사례가 있다.

말군 제작에 사용된 재료는 단(緞) · 능(綾) · 초(綃) · 주(紬)와 같은 견직물들이다. 왕비와 왕세자빈의 말군 중에는 첩금(貼金, 금박)으로 장식한 스란[膝襴]과 같이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과 금실을 넣어 짠 금선(錦線), 무늬가 있는 화문능(花紋綾), 화문단(花紋段), 화사주(花絲紬) 등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 상궁 이하 궁녀는 주(紬), 면포(綿布)와 같은 소박한 직물을 사용하여 신분에 따라 재료의 차이를 두었다.

여성의 말군 착용 모습은 ‘인조장렬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 ‘화성원행 반차도’ 등의 그림 속에 묘사된 상궁 이하 기행나인에서 볼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신윤복의 ‘절로가는 길’ 등의 풍속화에서도 확인된다.

/*이상의 그림도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음

[그림 4] 인조장렬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 1638 (서울대학교 규장각) [그림 5] 화성원행 반차도, 1795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6] 신윤복의 절로가는 길 (간송미술관)*/

남자의 말군은 문헌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의 풍속화인 ‘사계풍속도(四季風俗圖) 노상풍정(路上風情)’, ‘사람의 일생[平生圖] 대번옹절(大藩擁節)’ 등에서 넓은 포 자락을 말군 속에 넣어 허리가 가슴에 이르도록 올려 입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말군은 좁은 부리에 발을 넣고 나면 배래, 하단, 옆선이 막혀 있어 바지폭 안에 넓은 치마나 긴 포를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는 형태의 옷으로 말 타기가 편하도록 구성된 기능적이며 실용적인 바지이다.

참고문헌

원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국혼정례國婚定例)』
『상방정례(尙方定例)』
『인조장렬후가례도감의궤(仁祖莊烈后嘉禮都監儀軌)』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악학궤범(樂學軌範)』

단행본

周錫保, 『中国古代服飾史』(中国戏剧出版社, 1991)
정미숙, 『한국의식주생활사전_의생활』(국립민속박물관, 2017)
정미숙, 『한복인문학사전』(경상북도,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2018)

논문

박성실·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韓國服飾』 2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2)
정미숙·송미경, 「조선시대(朝鮮時代) 말군(袜裙)의 실물 제작법에 관한 연구」(『服飾』 57-7, 한국복식학회, 2007)
최윤희·이은주, 「16세기 해주오씨(海州吳氏) 묘 말군의재현에 관한 연구」(『韓國服飾』 47,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22)

인터넷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이 뮤지엄(https://www.emuseum.go.kr/main)
디지털장서각(https://jsg.aks.ac.kr/)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서울대학교 규장각 원문서비스(http://kyudb.snu.ac.kr/search/search.do)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
한국고전번역원(http://www.itkc.or.kr)
한국학자료센터(https://kostma.aks.ac.kr/)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정미숙(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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