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보 才物譜≫에서는 ‘생사로 제직된 얇은 견직물(綃生絲薄繪)’이라 정의하고, 중국문헌인 ≪설문 說文≫·≪옥편 玉篇≫·≪광운 廣韻≫ 등에서는 초를 생견사직물(綃生絲也)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임대춘(林大春)은 ≪광아 廣雅≫를 인용하여 초를 견(絹)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고, ≪일체경음의 一切經音義≫에서는 초를 증(繒)·겸(縑)·기(綺)의 속(屬)이라고 하여 초가 일반적 견직물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연오랑(延烏郎)과 세오녀(細烏女)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왕과 왕비가 되매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자, 세오녀가 제직한 초로 하늘에 제사지내니 옛날과 같이 되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초를 어고(御庫)에 소장하여 국보로 삼았으며, 이 어고를 유비고(遺妃庫)라 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 고대의 직물박물관인 셈이다. 고려시대에도 초·백초·홍초가 사용된 기록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자적(紫的)·백·자·대홍·청·남·초록·아청색(雅靑色) 등의 초와 생초·백숙초(白熟綃)가 있어 초가 생견직물만이 아니었음이 나타난다.
광초(廣綃)·영초(英綃)·고영초(庫英綃)·설한초(雪漢綃)·곡생초(曲生綃)·모초(毛綃)·궁초·고초·숙초·세초 등도 있었다. 초는 근년까지 많이 사용되었는데, 오늘날에는 그 명칭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