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선망 ()

산업
물품
서해에서 주로 조기나 청어를 잡을 때 사용하던 재래식 두릿그물 어구.
물품
재질
목재 등
용도
조기, 청어 어업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망선망은 서해에서 주로 조기나 청어를 잡을 때 사용하던 재래식 두릿그물 어구이다. 늦어도 18세기 중반 이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1920년 이전까지 전라도 이북과 강원도 이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재래식 두릿그물이다. 약 20~40여 명이 탄 어선 한 척이 각각 봄철과 겨울철 무리 지어 회유하는 조기나 청어를 거대한 그물로 둘러싼 뒤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안강망이 일본에서 도입되어 서해 어업에 적합하게 개량되면서, 19세기 서해를 대표하던 재래식 조기잡이 어구였던 망선망을 빠르게 대체하였다.

정의
서해에서 주로 조기나 청어를 잡을 때 사용하던 재래식 두릿그물 어구.
연원

망선망은 20세기 전반까지 전라도 이북과 강원도 이북 해역에서 조기청어를 어획하는 조선의 대표적인 재래식 주1 어법을 지칭한다. 서해의 대표적인 재래식 조기 어구주목망(柱木網)이나 중선망(中船網)이 조류가 강한 곳에 설치되는 것과 달리, 망선망은 조류가 약한 곳에서 사용되었다. 18세기 중반 『균역청사목(均役廳事目)』 황해도 편에 나오는 양중입선휘리(洋中入船揮罹)나 경상도 편의 양중거휘리(洋中擧揮罹)가 망선망에 가장 가까웠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형태와 제작 방식

1939년 자료에 따르면, 망선은 30년 전까지 서해의 가장 주요한 조기 어구로, 한 척에 30인 내지 40인의 선원이 탑승해 조류가 완만한 어장에서 사용되었다. 또, 1930년대 이전까지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사용되던 망선은 22명의 선원이 삼베 껍질로 만든 그물을 가지고, 봄철 서해를 따라 북상하는 조기를 따라 전라남도에서 평안북도 압록강 하구까지 북상하며 조업하였다.

변천 및 현황

1919년 자료를 보면, 1917년 기준 망선망은 전라남도 13척, 전라북도 4척, 충청남도 14척, 평안북도 14척 등의 총 45척이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망선은 자연환경과 기술 변화에 따라 쇠퇴하고 있었다. 서해의 주요 어구였던 망선은 겨울철 주요 어획 대상인 서해 청어가 19세기 말 절멸하면서 크게 타격을 받았다. 또, 망선은 봄철 어선으로 사용되는 것 외에 장거리 운반선으로도 사용되었는데, 기선이나 기차 등의 새로운 운반수단이 등장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하락하였다. 결국 기동성이나 노동생산성이 높고 젓새우 등 다양한 어종을 어획할 수 있는 안강망이 일본에서 도입되어 서해 어업에 적합하게 개량되면서, 19세기 서해를 대표하던 재래식 조기잡이 어구였던 망선망을 빠르게 대체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수산편람』(조선총독부, 1919)
『한국수산지 1』(농상공부, 1908)

논문

오창현, 「20세기 전후 서해안 대형 어선어업의 존재양상과 전개과정: 충남 서천군 서면의 망선 어업을 중심으로」(『도서문화』 35,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2010)
정문기, 「조선석수어고」(『조광』 4-4, 1939)
주석
주1

그물의 하나. 크고 기다란 띠 모양의 그물로서 물속에 수직으로 둘러친 다음에 미리 장치해 둔 주머니 끈 모양의 죔줄을 졸라매어, 고기 떼가 달아나지 못하게 하여 차차 죄어 가며 고기를 잡는다. 우리말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