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우리 나라 재래식 어망 중에서는 역사가 짧은 것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말기에 있어서 망선망은 강원도 북부 이북의 동해안과 전라도 이서북(以西北)의 서해안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이 그물로 동해안에서는 도미·고등어·삼치·방어·전어 등을 잡았고, 서해안에서는 조기·민어·준치·갈치·달강어 등을 잡았다. 한 말의 망선망은 일본산 면사로 만들고 있었으나, 그 이전은 다른 어망과 같이 칡덩굴·섬유·마사(麻絲)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업에는 망선과 종선(從船) 2척의 어선이 동원되었다. 어부 12명이 승선한 망선은 해안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연안까지 출어하여 어군을 포위하고 어망의 양쪽 끝에서부터 끌어올려 어류가 어포부(魚捕部)에 들어간 것을 잡아올렸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 종선은 펼쳐진 어망이 정상적인 형태를 유지하도록 돌보았다. 그리고 종선은 어획물의 적재나 어군 탐색의 구실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의 어구·어법이 거의 모두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으나, 망선망만은 예외적으로 능동적으로 어군을 탐색하여 어획하는 어망으로서 상당히 발달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전래된 능률적 어망에 눌려 망선망어업은 쇠퇴하였다. 1920년대 초에는 50톤 미만에 불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