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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곽종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5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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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곽종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5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권수·목록 165권 합 63책. 속집 12권 4책. 신연활자본. 1925년 그의 문인인 박봉호(朴鳳浩) 등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서문과 발문은 없으나 권말에 간행 내역이 있다. 이 책은 제1책부터 제3책까지 권수로, 제1책은 돈유(敦諭)·소·차자(箚子)·독대일기(獨對日記)·사장(辭狀), 제2·3책은 목록이다.

제4책부터 권1∼9에 부 6편, 조(操) 1편과 시 1,820여수, 권 10∼127에 서(書) 약 3000여 편, 권 128∼132에 잡저 123편, 권 133∼136에 서(序) 107편, 권137∼140에 기 116편, 권 141·142에 발 71편, 권143에 명 60편, 권 144에 잠 21편, 찬 17편, 송 2편, 혼계(昏啓) 4편, 상량문 10편, 권145·146에 축문 13편, 제문 43편, 애사 11편, 권147∼151에 비문 34편, 묘지명 42편, 광지(壙誌) 5편, 권152∼154에 묘표 107편, 권155∼161에 묘갈명 168편, 권162∼165에 행장 19편, 유사 3편, 전(傳) 6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 권1에 시 22수, 서(書) 38편, 권2∼11에 서(書) 529편, 권12에 잡저 15편, 서(序) 2편, 기 1편, 발 2편, 명 1편, 축문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1책의 돈유 3편은 모두 1899·1903·1904년 고종이 그의 학문과 도덕을 면려하며 소명하는 글이다.

소 가운데 1899년과 1903년에 올린 「사소명소(辭召命疏)」 2편은 왕의 부름을 거절하는 내용이다. 차자는 군학(君學)과 시무(時務)에 대해 진언한 내용이다. 고종은 궁내부(宮內部)에 명해 저택을 지어주고, 그를 의정부참찬에 임명했으나 끝내 사절하고 만여언(萬餘言)에 달하는 차자를 올렸다.

「독대일기」는 그가 두 차례에 걸쳐 고종을 독대로 알현, 경국(經國)의 급무를 개진한 내용에 관해 기록한 것이다. 사장은 비안현감(比安縣監)과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등에 임명된 것을 사절하면서 관찰사나 의정부에 제출한 사직서이다. 저자의 시문은 제4책부터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시는 수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시형(詩型)과 소재가 또한 다양하다. 대개 기해시가 많은 편으로, 그가 1883년 관동지방의 명승지를 관상(觀賞)하고 지은 시는 「동유록(東遊錄)」에 묶어져 있다. 특히 금강산의 경치에 대한 것이 무려 120여수에 이른다. 여러 작품에서 그의 문학적 기질이 풍부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권9의 끝에는 악부(樂府) 16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권10에서 권127까지 총 118권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다른 시문집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대개 문목(問目)과 별지를 첨부해 학문에 관한 문답을 주고받은 것이 많다.

그의 스승인 이진상(李震相)에게 보낸 것이 약 20여 편에 달하며, 그밖에 선배학자인 박규상(朴奎祥)을 비롯해 이돈우(李敦禹)·김흥락(金興洛)·이만인(李晩寅)·박치복(朴致馥)·최익현(崔益鉉) 등 많은 사람들과 서찰을 주고받았다.

이 서신들을 통해 그가 당시 가지고 있던 학문적인 명망에 못지 않게 매우 활동적인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주로 권128에서 권132까지의 잡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저자는 한말 영남학파를 주도한 유학의 대가로서, 특히 성리학은 그가 거의 전 생에 걸쳐 심혈을 경주한 연구 대상이었다.

이황(李滉)으로부터 이어져온 학통을 계승해 그는 주리적(主理的) 경향의 성리학설을 신봉했으며, 또한 기존의 이론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학설을 추가해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잡저에는 성리학에 관해 「심동정도설(心動靜圖說)」·「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심성잡기(心性雜記)」·「심출입집설(心出入集說)」·「유성재심설변(柳省齋心說辨)」 등 단편적인 논설 이외에도 「이결(理訣)」 상·중·하와 「이결속편(理訣續篇)」 상·하의 장편으로 된 논설이 있다.

「이결」은 그가 31세 때 지었다고 하는데, 시종 주리(主理)로 일관해 성리학에 관한 이론을 심도 있게 전개한 대표적인 논설이다. 「유성재심설변」은 기호학파인 유중교(柳重敎)의 심설(心說)을 논박한 글이다. 그의 성리학에 관한 학문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논문이다.

기타 「석성(釋性)」·「석지각(釋知覺)」 등 불교의 심학(心學)을 파헤친 논문과 「후천괘어(後天卦語)」·「역역수설(易逆數說)」·「주재설(主宰說)」 등 역학적인 내용의 논문들은 성리학에 관한 그의 학문적 체계를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이밖에도 많은 학술적 논문이 수록되어 있지만, 보다 전문적인 연구와 평가가 요청된다. 이 책은 일제하의 가혹한 검열을 거쳐 출판된 관계로 문장 중에 삭제 당한 부분이 많은 것이 아쉽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참고문헌

『한말영남유학의 지주 곽종석』(박종홍, 1977)
『삼·일운동과 유교계』(허선도, 동아일보사, 1969)
『조선유학사』(현상윤, 민중서관,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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