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별명은 희인(希仁), 호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예조참의 박미(朴楣)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1483년(성종 1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486년 22세의 나이로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영예를 얻었다. 그 뒤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홍문관교리를 지냈다. 문장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고, 서법(書法)에 능하여 송설체(松雪體)에 특기가 있었다. 1488년 예빈시직장으로 있을 때 허종(許琮)을 따라 명나라 사신 규봉(圭峰)·동월(董越)을 의주의 의순관(義順館)에서 맞이하였다.
이때 동월이 그의 시문과 필법을 보고 감탄하였고, 우아한 성품과 단정함을 기려서 ‘희인(希仁)’이라 이름하였다. 명나라의 부사 왕창(王敞)도 시에는 호연(浩然)의 기상이 있고, 글씨는 당나라 현종간의 천보서법(天寶書法)을 계승하였으며, 원나라 제일의 서예가인 조맹부(趙孟頫)의 서체를 잘 쓴다고 놀라워하였다.
그는 강의(剛毅)·정직의 기질이 있었고, 매우 청렴하여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않았다. 청주의 국계서원(菊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눌재유고(訥齋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