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현읍지』는 대한제국기 충청남도 면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인 『여지도서』, 1871년에 제작된 『호서읍지』와 항목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다. 이는 시대에 따라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지역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앞서 편찬된 문헌들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면천현읍지(沔川縣邑誌)』의 저자 및 편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한제국기에 편찬하였다. 정확한 편찬 시기와 간행 연도는 알 수 없다.
수록 항목은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중관(衆觀), 산천, 단묘(壇廟), 공해(公廨), 창고(倉庫), 물산(物産),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阨), 봉수(烽燧),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蹟), 인물, 열녀,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책판(冊板) 등으로 구성하였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수록된 항목[31개]과 차이가 있다. 『여지도서』에 수록된 항목 중 빠진 것은 성씨와 풍속, 제언 등 3개 항목이다. 『면천현읍지』에 새롭게 추가된 항목 중 책판에 『용재문집(容齋文集)』, 고적 항목에 「반월루중수기(伴月樓重修記)」 · 「원기루기(遠寄樓記)」 · 「원기루중수기(遠寄樓重修記)」 · 「원경루기(遠景樓記)」 · 「봉우헌중수기(奉憂軒重修記)」 · 「군자정기(君子亭記)」 · 「군자정상량문(君子亭上樑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면천현읍지』는 1871년(고종 8)에 제작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속한 「면천군읍지(沔川郡邑誌)」와 수록 내용뿐만 아니라 한전, 수전, 전세, 대동 등 항목의 통계 수치까지 같다. 다만 고적 항목에 각종 기문이 추가된 점, 그리고 『호서읍지』에 수록된 「면천군지도(沔川郡地圖)」와 풍속 항목이 빠진 점 등에서 차이가 난다. 한편, 1899년(광무 3)에 제작된 『충청남도읍지(忠淸南道邑誌)』의 「면천군읍지」에는 본 읍지에 수록된 고적 항목의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18세기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와 19세기에 편찬된 지방 읍지인 『면천현읍지』의 항목 구성이 차이 나는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18세기의 전국 지리지와 19세기의 지방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그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지금은 당진시가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면천 지역이 정치와 경제,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다. 이는 관애 항목이 별도로 구성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역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읍지의 항목 구성도 변화한다. 두 문헌을 비교 검토하여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면천 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광범위하게 편찬된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地誌)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다. 『면천현읍지』 역시 조선시대 면천 지역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방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