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창경궁 명정문은 창경궁 외전(外殿)의 중문(中門)이며 행각은 문의 좌우로 연결되는 회랑이다. 행각의 앞면 중앙에 있는 명정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행각은 모두 복랑(複廊)으로 2칸이며 기둥 위에는 새 날개 형태의 장식(裝飾)인 익공(翼工)을 하나 설치한 초익공식(初翼工式)이다.
1484년(성종 15) 창경궁을 세울 때에 지은 것이지만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버려, 1616년(광해군 8) 재건되었다. 회랑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시대 때 철거되었다가 1986년 복원되었다.
명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로, 구조와 규모에 있어서 경복궁의 근정문(勤政門), 창덕궁의 인정문, 덕수궁의 중화문(中和門)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공포(栱包)와 합각머리 아래의 쪽천장 짜임만이 다르다.
공포는 내삼출목(內三出目)·외이출목(外二出目)으로 역시 경희궁의 홍화문과 같은 수법이지만, 밖의 짜임에서 출목을 하나 생략하고 제공(諸貢: 공포에 있어서 첨차와 살미가 층층이 짜여진 것)을 하나만 둔 점은 아주 드문 형식이다.
안쪽은 그대로 놓아두고 바깥쪽만을 생략한 예는 다포집의 경우에 있어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데, 평양의 보통문(普通門)과 숭인문(崇仁門)에서 안팎을 모두 생략하여 균형을 잡은 예가 남아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하고 합각머리 밑의 엮음을 쪽천장으로 가렸으며, 쪽천장의 얽음은 우물천장으로 하였다.
명정문은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 상에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울러 일반적인 궁궐의 정전과 그 문이 남향을 하고 있는 데에 반해,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과 함께 동향을 하고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건물의 짜임이 착실하고 알차서 조선 중기의 문을 대표할 만하고 짜임새가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궁궐 중문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