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가 891년 죽주(竹州)의 기훤(箕萱)에게 투탁하였다가, 다음해 북원(北原)의 양길(梁吉)에게 몸을 맡겼다. 양길은 궁예를 잘 대우하여 군사를 나누어주어 동쪽을 공략하게 하였다.
궁예는 주천(酒泉 : 지금의 강원도 영월)·울오(鬱烏)·어진(御珍) 등을 습격하여 모두 항복받았다. 그 다음해 명주(溟州 : 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들어가니 군사가 3,500여명이 되어 이를 14개의 부대로 나누어 김대검(金大黔)·모흔·장귀평(長貴平)·장일(張一) 등을 사상(舍上), 즉 각 부대의 부장으로 삼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