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 창건하였으며, 고려 말기 나옹(懶翁)이 중창하였고, 조선시대에 폐허가 되었다. 묘길상은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다른 이름으로서, 현재의 절터는 중향성(衆香城)이 끝나는 부분 근처에 있고, 절터 옆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중향성의 중향은 향적불(香積佛)이 머무는 국토의 이름으로, 『유마경(維摩經)』에서 유마거사가 문병을 온 문수보살과 대중들을 공양하기 위해서 향반(香飯: 음식)을 먹였다는 곳이다.
마애여래좌상은 북한 지역에서 가장 크며,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02호로 지정되었는데, 고려 말기의 왕사(王師) 나옹이 직접 조각한 그의 원불(願佛)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단조로운 기법과 굵은 선의 처리 등 전체적으로 고졸(古拙)한 인상을 풍기고 있어 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원만한 상호(相好)와 안정감 있는 연화좌(蓮華座) 등 전체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우수한 작품이다.
이 불상의 존명(尊名)에 대해서는 미륵불이라는 설과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는 설이 있다. 최남선(崔南善)은 비로자나불이라고 주장하였는데, 그 논거에 따르면 이 불상이 비로봉 아래, 특히 금강산의 심장부에 있기 때문에 『화엄경』에 근거를 둔 법기보살신앙(法起菩薩信仰)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볼 때 이곳은 마땅히 비로자나불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불상의 경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비로자나불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인(手印)이다. 이 마애불 앞에는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47호로 지정되었다가 해제된 석등(石燈)이 있고, 마애불 옆 바위에는 윤사국(尹師國)이 쓴 ‘妙吉祥(묘길상)’이라는 음각의 글씨가 조각되어 있으며, 마애불 뒤편 평지에는 옛 절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