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년(태조 19)광흥사(廣興寺)·현성사(現聖寺)·내천왕사(內天王寺) 등과 함께 태조의 명으로 창건되었다. 1109년(예종 4) 4월예종이 재(齋)를 열어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였고, 1183년(명종 13) 윤11월명종이 태후를 순릉(純陵)에다 장사지낸 뒤 의창궁(義昌宮)에서 이 절까지 걸어가 승복을 입고 명복을 빌기도 하였다.
1262년(원종 4) 10월 몽고의 전란으로 불타버렸던 이 절과 공신당(功臣堂)을 중창하였다. 원래 공신당은 태조 이래의 공신 모두를 원형의 벽에다 그려놓고 매년 10월 불사(佛事)를 베풀어 그들의 명복을 기려왔던 곳이다.
공신당을 중창할 때 몽고병란 때 공이 컸던 최이(崔怡)·김인준(金仁俊)·유경(柳璥)·김홍취(金洪就) 등 8명의 영정을 더 추가하였다. 폐사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절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폐허화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