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미륵사

  • 종교·철학
  • 유적
  • 고려 전기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성안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위석 (전 경북대학교, 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개성 만월동 미륵사지 석불입상 정면 미디어 정보

개성 만월동 미륵사지 석불입상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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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성안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명으로 창건한 사찰.

내용

936년(태조 19)광흥사(廣興寺)·현성사(現聖寺)·내천왕사(內天王寺) 등과 함께 태조의 명으로 창건되었다. 1109년(예종 4) 4월예종이 재(齋)를 열어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였고, 1183년(명종 13) 윤11월명종이 태후를 순릉(純陵)에다 장사지낸 뒤 의창궁(義昌宮)에서 이 절까지 걸어가 승복을 입고 명복을 빌기도 하였다.

1262년(원종 4) 10월 몽고의 전란으로 불타버렸던 이 절과 공신당(功臣堂)을 중창하였다. 원래 공신당은 태조 이래의 공신 모두를 원형의 벽에다 그려놓고 매년 10월 불사(佛事)를 베풀어 그들의 명복을 기려왔던 곳이다.

공신당을 중창할 때 몽고병란 때 공이 컸던 최이(崔怡)·김인준(金仁俊)·유경(柳璥)·김홍취(金洪就) 등 8명의 영정을 더 추가하였다. 폐사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절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폐허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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