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라시[奈良市]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에 소장된 6폭 산수화로, 비단 바탕에 수묵 담채로 그렸다. 각 폭의 크기는 세로 39.6㎝, 가로 60.1㎝이다. 미법(米法)을 사용하여 연운(煙雲)이 자욱한 산수풍경을 담고 있다. 송의 서화가인 미불(米芾)과 그의 아들 미우인(米友仁)이 창안한 미법은 산 표면과 나무 등을 쌀처럼 생긴 짧은 횡점(橫點)을 포개듯 찍어 묘사하는 기법으로, 주로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나 운산도(雲山圖)로 불리는 작품에 사용되었다. 이 화법은 고려 말에 미법을 사용한 원대 산수화가 유입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유학을 추종하면서 고려 말의 문화 성향을 지속한 사대부의 기호에 의해 조선 초까지 이어졌다.
작품에 작가로 적힌 이는 최숙창(崔叔昌), 이장손(李長孫), 서문보(徐文寶)인데, 15세기 후반에 활동한 화원(畫員)이다. 이장손은 1469년의 낙산사(洛山寺) 동종(銅鍾), 1474년의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 발원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 등 여러 불사에 화원 및 각수(刻手)로 참여하였으며, 1476년에는 세종 어진(御眞) 모사를 하였다. 최숙창은 1487년에 이장손과 함께 세자의 처소인 춘궁(春宮)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사슴 가죽으로 만든 적삼(赤衫)을 하사받았다. 서문보는 1483년에 도화서(圖畫署) 제조(提調)인 강희맹(姜希孟)의 추천으로 9품 체아직(遞兒職)에 천거되었다.
성현(成俔)과 이식(李湜)은 세 화가의 회화에 관한 글을 남겼다. 성현은 이장손과 최숙창에 대해 명성은 있으나 화격을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하였다. 이식의 기록에 의하면, 서문보 작품은 청록색 계열을 사용했다고 한다. 구름이 자욱하고 수묵이 무성하며 강을 낀 깊은 산에 사찰과 촌가가 자리한 산수화였다.
이같은 경향은 산수화 6폭에서도 확인된다. 여러 폭이고 세 화원의 이름이 적혀 있으나, 동일한 필치로 그려져 마치 한 화가의 작품인 듯 경물의 묘사가 유사하다. 직업 화가 신분인 화원에 의해 정형화된 화풍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각 폭에는 북송 시기 강남 산수화 방식인 미법을 사용하여 활엽수를 표현하였다. 또 그러면서도 바위에 주1이 보이고, 육중한 산세와 침엽수의 표현 등 화북 산수화의 요소가 함께 이용되었다. 이렇게 절충된 방식은 원나라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선적인 요소가 강하고 원근감을 강하게 표현하지 않은 공간 표현은 한국 회화의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고극공(高克恭)과 장언보(張彦輔) 등 원대의 미법산수화풍이 조선에 내재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산수화 6폭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청산백운도 혹은 운산도로 호칭되는 작품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이며, 안견화파(安堅畵派) 외에도 조선 초의 회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